우리 민족은 새해를 인사 나누는 것으로 맞이하였다.
대가족이 함께 모여 조상께 차례를 지내고 웃어른께 세배를 하고 새해 소망과 덕담을 나누었다.
언제부터인가 만두를 빚어 떡국과 함께 절기 음식으로 먹었다. 이때 중요한 의례가 있으니 바로 음복이다.
조상께 올렸던 술을 노소 가족이 나누어 마시는 것을 말한다. 설날 마시는 술은 액막이 술이다. 예나 지금이나 건강은 모든 사람들의 바람이다.
사실 만두도 기원을 보면 건강과 행운을 해치는 귀신을 쫓는 음식이다.
일 년 동안 닥칠지도 모를 액을 없애는데 정월 초하루의 음복은 특효약으로 여겨졌다.
특히 설날에는 도소주를 마시는 가정이 많았다.
도소는 산초 육계피 등을 섞어서 만드는 한약제인데 도소를 넣어 빚은 술은 삿된 기운을 물리친다는 속설이 있다.
정초의 음주는 기원과 정성의 결정체로 가족끼리 서로 나누어야 할 덕목이었다.
원단에 어른들과 젊은이들이 함께 마시는 술은 더욱 더 중요한 문화적 의미가 담겨 있다.
세살 버릇이 여든까지 가는 법이다. 어려서 처음 술을 대할 때 어떻게 했느냐가 나중에 술버릇을 형성하는 데 절대적이다.
일생을 살면서 본인이 원하든 아니든 술을 마셔야 할 경우가 많다.
어른들 앞에서 배운 술버릇은 사회생활을 하는 데 매우 좋은 경험이 된다.
술을 마시면 평소에 억제되어 깊게 숨어 있던 감정이 은근히 풀려 분출된다. 음주량이 늘어남에 따라 감정이 점점 이성을 지배하게 된다.
그러나 어른들 앞에서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요즘 음주 문화에서 이성과 감정의 조화를 유지하면서 술에 취한다 하면 너무 생소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어른들 앞에서 마셔도 술에 취하기 마련이다.
그러면서도 추하게 되지 않는 것이 주도의 시작이다.
대개 초등학교 학생들 나이에 배우는 <소학(小學)> 책에는 술 마시는 예법에 대해 나와 있다.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술자리에서 지켜야 할 기본 사항을 가르쳤다. 일찍부터 음주문화에 대하여 가르치는 조상들의 자연스런 교육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설날에 쓰는 술은 동짓달이나 섣달에 담근다.
이때는 겨울철이므로 산폐될 우려가 없으므로 발효를 길게 해 일 년 중 가장 맛있는 술이 빚어진다.
술독에 용수를 박아 맑게 괴는 술(청주)은 제사 지낼 때 쓰고 걸쭉하게 거른 술(막걸리)은 손님들 접대에 쓴다.
정초에는 집집마다 술맛 경쟁이 일어난다. 온 동네를 한 바퀴 돌아다닌 세배꾼들은 어느 집 술맛이 좋고 나쁜 것을 평가하게 마련이다.
부녀자들은 은근히 솜씨 자랑도 했을 것이다.
이런 풍습은 일제시대 초기에 가정에서 술 담그는 것을 금지한 후에도 몰래 계속되었다.
70년대까지 이어지던 이러한 전통이 서서히 자취를 감춰가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