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의 와인이 탄생하는데 필요한 시간, 3년
세계 최초의 오미자 와인
Omyrose
한병의 와인이 탄생하는데
필요한 시간, 3년
세계 최초의
오미자 와인
오미로제
STORY OF OMYROSE
오미로제 이야기
OmyRosé 탄생의 계기
주류회사 경력 10년이었던 이종기(Johnnie Lee)는 1990년 스코틀랜드 수도 에딘버러의 헤리옷 와트 대학원에서 양조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어느 날 세계 각지에서 모인 급우들과 함께하는 파티가 있었는데 주임교수의 제안으로 각자 자기 나라의 대표 명주를 가져와 시음을 하였다.
프랑스 여학생이 멋진 샴페인 글라스와 로제 샴페인을 가져왔는데 스파클이 어찌나 아름다웠는지!
그는 한국의 대표적인 약재 침출주를 준비했는데 주임교수가 시음을 한 후 죠크를 하였다.
“자니 이 술은 허브향도 있지만, 조미료 맛이 지배적인 것 같군!”
이 말에 학생들이 까르르 웃었다.
그는 크게 당황했다.
모든 술들이 다 호평이었는데 그의 술만 악평이었다.
이때부터 그는 세계의 모든 애주가들이 감탄할 만한 명주를 반드시 그의 손으로 만들고야 말겠다고 결심했다.
오미자의 발견 : 천혜의 양조용 재료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그는 고향집에 개인 연구소를 만들어 한국에서 생산되는 모든 원료로 양조 실험을 했다.
세계의 명주들은 양조용 원료가 생식용과는 다른 별도의 품종이 개발되어 있었다. 그러나 한국에는 곡물이나 과일에 양조용 원료라는 개념이 도입되지 않아 원료를 구하는 것부터가 어려운 난제였다. 일단 그는 쌀을 비롯한 곡물과 과일 그리고 온갖 약재에 대한 양조 적성을 검토하였다.
그가 다녔던 다국적 주류 회사의 중앙연구소에서는 세계 각지에서 생산되는 수많은 원료로 신제품 개발을 시도하고 있었고, 그는 수 차례 해외연수를 통해 여러 종류의 신제품 개발 방법을 익힐 수 있었다.
술은 소비자들에게 관능적 매력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원료의 색깔과 향기, 맛은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발효와 숙성은 기술자의 몫인데, 원료 처리와 효모나 젖산균 등의 미생물 연구가 그의 몫이며, 바로 이것이 성공을 결정하는 핵심이다.
그는 한국에서 구입 가능한 원료의 양조 적성을 비교해 가면서 고심하였다. 그중 유독 오미자가 눈에 띄였다.
한반도가 원산지인 오미자는 매력적인 색조와 상큼한 신맛, 은근한 단맛, 쓴 맛과 매운맛의 허브향, 그리고 간간한 짠맛까지 지닌 과일로 그에게는 천혜의 양조용 재료로 느껴졌다.
오미자 와인 가도의 꿈
오미자는 더할 나위 없는 양조용 재료라는 확신이 들었으나 발효 실험을 위한 오미자를 확보하는것 부터가 어려운 문제였다. 오미자는 대부분 한약재로 사용하던 시기로 야생오미자를 채취하거나 일부 지역에서만 약용 목적으로 재배를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그가 2006년말 문경의 산골에 있는 오미자 농장을 방문했을 때 뇌리에 스치는 전율은 그를 오미자 연구의 장정에 밀어 넣기에 충분했다.
탐스런 오미자 송이가 주렁주렁 열려, 오미자를 대량으로 공급할 수 있는 것을 보았다.
프랑스 부르고뉴의 그랑퀴르 와인 가도, 이탈리아 피에몽테의 끝 없는 구릉과 계곡의 와인 가도등을 여행할 때마다 부러워했던 그런 풍경이 그려졌다.
“오미자 와인을 세계 명주로 개발하면 산골마다 오미자 농원이 생겨날 것이고, 먼 훗날 우리나라에도 백두대간을 따라 오미자 와인 가도가 생기겠지!”
그는 꿈을 그리기 시작했다.
오미자와인에 대한 도전
2006년말 그는 27년간 다니던 회사를 떠나, 2007년 영남대에서 양조학을 개설하면서 오미자와인 연구에 전념하였다.
이듬해에는 오미자 생산지 문경에 공장과 연구소를 세우고 개발에 몰두했다.
오미자의 변하기 쉬운, 그 매력적인 색을 보존하고 신맛과 쓴 맛을 조화시키며 특유의 스파이시한 향을 내는 영롱한 오미자와인을 만들기 위한 온갖 실험에 도전하였다.
유학시절부터 부러웠던 로제 스파클링와인을 포함한 개발 실험을 수백 번 시도하였다.
어느 날 한 시료에서 격렬하게 부글거리는 것을 보고 집중적으로 연구한 결과 오미자 와인 발효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오미자의 날카로운 신맛을 부드럽게 누그러뜨리는 방법은 오크통 숙성으로 해결하였다.
봄에서 가을까지 그는 오미자 재배 농가에 가서 오미자의 생장과 수확 시점에 대하여 논의를 거듭하였다.
오미자 스파클링 와인, 동페리뇽을 스승으로
그는 오미자 와인 발효에 대해 자신감을 갖게 되었지만,스파클링 와인을 만드는 샴페인 공법은 또 다른 난관이었다.
병에서 2차 발효를 하여 충분한 압력으로 스파클을 만들어 내는 기술, 그리고 압력 손실없이 찌꺼기를 제거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극단적으로 어렵지만 재미있는 도전이었다.
300여 년 전 프랑스 샹파뉴의 에페르네 근교 오빌레 수도원에서 실명하면서까지 샴페인을 만든 동페리농 수사를 스승으로 삼았다. 그는 에페르네를 수차례 방문하면서 콧대높은 샴페인 메이커들과 상담하면서 퍼즐게임을 풀어나갔다.
그는 2010년말 오미자와인 제조방법에 대한 특허를 갖게 되고, 2011년에 3년 숙성한 로제 스파클링와인을 완성하였다.
20년전 그의 학창시절부터 부러워했던 로제 샴페인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오미자와인 “OmyRosé“는 이렇게 탄생되었다.
STORY OF OMYROSE
오미로제 이야기
OmyRosé 탄생의 계기
주류회사 경력 10년이었던 이종기(Johnnie Lee)는 1990년 스코틀랜드 수도 에딘버러의 헤리옷 와트 대학원에서 양조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어느 날 세계 각지에서 모인 급우들과 함께하는 파티가 있었는데 주임교수의 제안으로 각자 자기 나라의 대표 명주를 가져와 시음을 하였다.
프랑스 여학생이 멋진 샴페인 글라스와 로제 샴페인을 가져왔는데 스파클이 어찌나 아름다웠는지!
그는 한국의 대표적인 약재 침출주를 준비했는데 주임교수가 시음을 한 후 죠크를 하였다.
“자니 이 술은 허브향도 있지만, 조미료 맛이 지배적인 것 같군!”
이 말에 학생들이 까르르 웃었다.
그는 크게 당황했다.
모든 술들이 다 호평이었는데 그의 술만 악평이었다.
이때부터 그는 세계의 모든 애주가들이 감탄할 만한 명주를 반드시 그의 손으로 만들고야 말겠다고 결심했다.
오미자의 발견 : 천혜의 양조용 재료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그는 고향집에 개인 연구소를 만들어 한국에서 생산되는 모든 원료로 양조 실험을 했다.
세계의 명주들은 양조용 원료가 생식용과는 다른 별도의 품종이 개발되어 있었다. 그러나 한국에는 곡물이나 과일에 양조용 원료라는 개념이 도입되지 않아 원료를 구하는 것부터가 어려운 난제였다. 일단 그는 쌀을 비롯한 곡물과 과일 그리고 온갖 약재에 대한 양조 적성을 검토하였다.
그가 다녔던 다국적 주류 회사의 중앙연구소에서는 세계 각지에서 생산되는 수많은 원료로 신제품 개발을 시도하고 있었고, 그는 수 차례 해외연수를 통해 여러 종류의 신제품 개발 방법을 익힐 수 있었다.
술은 소비자들에게 관능적 매력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원료의 색깔과 향기, 맛은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발효와 숙성은 기술자의 몫인데, 원료 처리와 효모나 젖산균 등의 미생물 연구가 그의 몫이며, 바로 이것이 성공을 결정하는 핵심이다.
그는 한국에서 구입 가능한 원료의 양조 적성을 비교해 가면서 고심하였다. 그중 유독 오미자가 눈에 띄였다.
한반도가 원산지인 오미자는 매력적인 색조와 상큼한 신맛, 은근한 단맛, 쓴 맛과 매운맛의 허브향, 그리고 간간한 짠맛까지 지닌 과일로 그에게는 천혜의 양조용 재료로 느껴졌다.
오미자 와인 가도의 꿈
오미자는 더할 나위 없는 양조용 재료라는 확신이 들었으나 숱한 시행착오를 겪게 되었다.
청정하면서도 오미자의 향과 맛을 그대로 내는 와인을 만드는 것은 요원한 일인 것 만 같았다. 더군다나 발효 도중에 매력적인 붉은 색깔이 퇴색되어 또 하나의 난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던 중 그가 2006년말 문경의 산골에 있는 오미자 농장을 방문했을 때 뇌리에 스치는 전율은 그를 오미자 연구의 장정에 밀어 넣기에 충분했다.
탐스런 오미자 송이가 주렁주렁 열려, 오미자를 대량으로 공급할 수 있는 것을 보았다.
프랑스 부르고뉴의 그랑퀴르 와인 가도, 이탈리아 피에몽테의 끝 없는 구릉과 계곡의 와인 가도등을 여행할 때마다 부러워했던 그런 풍경이 그려졌다.
“오미자 와인을 세계 명주로 개발하면 산골마다 오미자 농원이 생겨날 것이고, 먼 훗날 우리나라에도 백두대간을 따라 오미자 와인 가도가 생기겠지!”
그는 꿈을 그리기 시작했다.
오미자와인에 대한 도전
2006년말 그는 27년간 다니던 회사를 떠나, 2007년 영남대에서 양조학을 개설하면서 오미자와인 연구에 전념하였다.
이듬해에는 오미자 생산지 문경에 공장과 연구소를 세우고 개발에 몰두했다.
오미자의 변하기 쉬운, 그 매력적인 색을 보존하고 신맛과 쓴 맛을 조화시키며 특유의 스파이시한 향을 내는 영롱한 오미자와인을 만들기 위한 온갖 실험에 도전하였다.
유학시절부터 부러웠던 로제 스파클링와인을 포함한 개발 실험을 수백 번 시도하였다.
어느 날 한 시료에서 격렬하게 부글거리는 것을 보고 집중적으로 연구한 결과 오미자 와인 발효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오미자의 날카로운 신맛을 부드럽게 누그러뜨리는 방법은 오크통 숙성으로 해결하였다.
봄에서 가을까지 그는 오미자 재배 농가에 가서 오미자의 생장과 수확 시점에 대하여 논의를 거듭하였다.
오미자 스파클링 와인, 동페리뇽을 스승으로
그는 오미자 와인 발효에 대해 자신감을 갖게 되었지만,스파클링 와인을 만드는 샴페인 공법은 또 다른 난관이었다.
병에서 2차 발효를 하여 충분한 압력으로 스파클을 만들어 내는 기술, 그리고 압력 손실없이 찌꺼기를 제거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극단적으로 어렵지만 재미있는 도전이었다.
300여 년 전 프랑스 샹파뉴의 에페르네 근교 오빌레 수도원에서 실명하면서까지 샴페인을 만든 동페리농 수사를 스승으로 삼았다. 그는 에페르네를 수차례 방문하면서 콧대높은 샴페인 메이커들과 상담하면서 퍼즐게임을 풀어나갔다.
그는 2010년말 오미자와인 제조방법에 대한 특허를 갖게 되고, 2011년에 3년 숙성한 로제 스파클링와인을 완성하였다.
20년전 그의 학창시절부터 부러워했던 로제 샴페인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오미자와인 “OmyRosé“는 이렇게 탄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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