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중의 매화꽃을 위시로 노란 산수유, 화사한 벚꽃, 다복한 개나리, 수수한 진달래, 향기로운 수수꽃다리 꽃들이 연달아 피어 봄의 향연이 무르익는다.
예나 지금이나 봄바람을 타고 화신(花信)이 북상하면 누구나 마음이 설렌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우리 옛 아낙들은 절기주를 빚었다.
18세기말에 쓰여진 <규합총서(閨閤叢書)>와 <경도잡지(京都雜志)>에 의하면 봄의 절기주로는 소곡주, 도화주, 두견주를 으뜸으로 꼽았다.
소곡주 중 충남 한산의 소곡주가 가장 유명하며 일명 ‘앉은뱅이 술’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의 한 선비가 한양으로 과거 보러가던 차에 목이 말라 한 산의 주막에 들러 미나리 부침을 안주삼아 소곡주를 한 잔 했는데 술맛이 좋아 한 잔을 더 하게 되었다.
그는 흥취에 젖어 시를 읊으며 연일 소곡주를 마시다가 과거 날짜가 지나게 되어 도로 낙향하였다 한다.
앉은뱅이 술이라는 말에 얽힌 또 다른 유래는 이렇다.
소곡주가 있는 어느 집에 도둑이 들었다.
그 도둑은 술을 보자 웬 떡이냐 싶어 한 잔을 냉큼 마셨는데 술 맛에 반해 연이 어 몇 잔을 더하게 됐다.그는 취하여 일어나지 못하고 그만 잡히고 말았다.
그래서 일단 한 잔을 마시게 되면 주저앉게 된다 하여 이런 이름이 전해내려 온다.
부여와 한산 지방의 술은 백제시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유서 깊은 술이다.
삼국사기에는 사비성 시대의 백제의 여러 왕들이 백마강을 바라보며 주흥을 즐긴 대목이 나온다. 일본 <고사기>에는 백제인 수수보리가 술 빚는 법을 일본으로 전하여 주신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백제 주신들의 후예가 오늘날 한 산 소곡주의 명인들로 환생한 것인가 보다.
두견주는 진달래꽃 술이다. 진달래를 두견화라 부르는 데에서 생긴 이름이다.
진달래는 우리나라 전역에 자생하는 꽃으로 벚나무를 사방에 식목하기 전만 해도 봄꽃의 대명사였다.
필자도 어렸을 때 진달래꽃을 따 먹은 추억이 생생하다.
진달래 꽃잎을 한입 넣고 씹으면 풋내 위에 향긋한 꽃향기가 배어나오고 약간의 단맛이 우러난다.
배가 부르도록 따 먹으면 입에 분홍색이 배어 적갈색이 되곤 했다.
이런 진달래꽃의 특성을 이용하여 만든 두견주는 은은한 진달래 향기와 옅은 분홍빛 색깔로 애주가들을 매료시켰다.
두견주는 전국에서 제조되었으나 충남 당진의 면천 두견주가 유명하여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온다.
복숭아꽃은 낭만의 상징이리라. 사람들은 예부터 이상향을 무릉도원에 비유하였다.
밝은 햇살 아래의 복숭아꽃은 그 색깔이 고혹적인 분홍이랄까? 신비의 꽃을 두고두고 음미하려고 선조들은 봄이면 도화주를 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