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 자연발생적으로 생기는 것이므로 세계 어느 곳에도 토속주는 존재한다.

토속주는 대개 그 지방의 자연 조건에 따라 발달되는데, 특히 무슨 원료를 사용했는가에 따라 종류가 달라진다.

 

 

아프리카에는 수수가 많이 나는 관계로 예로부터 수수로 술을 빚어 왔다. 수수는 보리와 함께 발아 과정에서 많은 효소를 생성하는 곡물이다.

아프리카의 술

따라서 아프리카에서는 토속주뿐만 아니라 현대식 Beer(맥주는 보리로 만든 술이라는 동양식 표현일 뿐이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이 술을 맥주라고 할 수는 없다)나 위스키를 생산하는 과정에서도 수수가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수수로 만든 술은 맛이 아주 담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필자는 스코틀랜드 유학 시절, 급우들과 술을 마시러 간 적이 있는데 그 중 한 친구가 사이다를 주문했다.

그 친구에게 왜 술을 마시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게 무슨 소리냐.” 하는 반문이 돌아왔다. 알고 보니 사이다가 바로 사과술이라는 것이었다.

무슨 이유로 우리나라에서는 무색의 탄산 청량 음료가 사이다로 불리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유럽에는 사과 과수원이 많기 때문에 사과술을 생산하는 곳이 많이 있다. 와인에 비하면 생산량은 미미하지만 사과 술 특유의 산뜻한 뒷맛 때문인지 꾸준히 맥을 이어가고 있다.

  

 

동남 아시아의 열대 지방에서는 야자의 과즙으로 야자술을 담가 마셨다. 야자는 공업적인 용도가 워낙 다양해서 야자술로는 그다지 많이 사용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야자술은 축제 때 사용되는 열대 지방의 민속주로서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다.

  

 

멕시코 고원의 사막 지대에는 곡물이나 과일이 자라기 어렵다. 그래서 그들은 사막에서 자라는 용설란의 즙을 이용하여 팔케라는 술을 만들었다. 이 지역 사람들은 전통적인 축제에서 완전히 취할 때까지 팔케를 마시는 것이 신에 대한 예의라고 믿고 있어서 그들은 축제 때가 되면 팔케를 걸신들린 듯이 퍼 마시고 취하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회교권에서는 음주를 율법으로 금하고 있다. 그러나 회교권 국가의 고위 인사들이 전부 금주를 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70년대에 걸쳐 우리 나라 경제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던 중동 건설에 참여한 한국인들이 무엇으로 사막에서 외로움을 달랠 수 있었을까?

 

중동의 오아시스나 식물 생장 가능 지역에는 석류가 흔했다.

과육이 풍부한 열대 지방의 석류를 까서 용기에 담고 한국에서 가져 온 건조 효모를 넣은 다음 밀봉하여 모래 속에 묻어 두면, 며칠 후에는 상큼한 술이 괸다.

 

이젠 지나간 이야기이므로 안심하고 할 수 있는 말이지만, 금주 지역에서 몰래 숨어서 마신 술이니 기분이 한결 짜릿하지 않았겠나 싶다.

모르긴 해도 이 석류주는 중동 파견 근로자들의 향수를 달래 주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했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이 있는 곳,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외로움과 슬픔으로 얼룩진 인간의 삶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술이 있기 마련이다.

  

초원의 술 마유주

광활한 초원에서 바람을 가르고 달리는 기마병단을 이끌고 세계 최대의 국가를 건설했던 칭기즈칸은 어떻게 그 수많은 병사들을 다스렸을까?

전투가 끝나면 병사들에게 취하도록 주어지는 술이 바로 마유주(馬乳酒)였다.

 

마유주

 

내몽고 지방에는 조, 수수, 강냉이 등 작물이 자라기 때문에 내몽고인들은 이들 곡식을 주식으로 한다.

그러나 고원이면서 강우량이 적은 외몽고 지방에는 곡식을 재배할 수 없는 관계로 목축으로 연명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들은 술만 마시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애락,아이락

그들의 주식은 바로 말 젖을 발효시킨 애락(騃酪)이다.

몽고인들은 일인당 평균 20여 두의 가축을 기르는데 말과 양이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이다.

그들은 집집마다 양가죽으로 만든 약 100리터들이의 가죽통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말젖을 넣고 고무래 같은 도구로 하루에 5,000번 정도씩 이틀 동안을 저으면 1차 발효가 일어난다.

 

이것을 절반 가량 덜어서 겔(집으로 사용되는 몽고텐트) 안에 있는 가죽통으로 옮긴다.

밖의 말젖통에는 다시 새 말젖을 가득 채우고 휘저어서 애락을 만든다. 겔 안의 통에서는 당연히 2차 발효가 진행된다.

겔 속에서 2차 발효된 애락의 알코올 농도는 4~5% 정도이다.

 

  

몽고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 애락을 마신다.

사실 그것 아니면 달리 먹고 살 음식이 없어서 그렇겠지만, 우리 식으로 하면 매일 막걸리만 마시고 사는 셈이다. 나이를 먹으면 모든 국민이 알코올 중독자가 되지나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애락의 맛은 요구르트 맛과 비슷한데 새콤한 향과 맛을 지니고 있다. 애락은 젖산 발효와 알코올 발효가 동시에 진행된 일종의 유제품이라고 볼 수 있다.

잡균의 오염이 방지되도록 두 가지 발효가 적절히 조화를 이룬 것이 아니겠는가.

   

그들은 애락을 증류하여 ‘아르키히’라는 소주를 내리는데, 이것이 고려시대에 원나라에서 우리나라로 전파된 증류 기술이다.

내몽고에서는 말보다 양이 많기 때문에 양젖을 발효시켜 증류한 아르키히를 만들어 마신다.

내몽고에서는 이 술을 항아리에 담아 수년간 땅 속에 묻어 숙성시켜서 고급술로 쓴다.

  

외몽고 지방에서는 발효 기술이 단지 취하기 위한 술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주식(말젖)을 보존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활용되고 있다.

  

고로쇠 와인

예로부터 식물의 수액은 약품, 화장품, 공업용 원료 등으로 널리 이용되어 왔다.

삼십년 전만 하더라도 농촌의 아낙네들은 초가을이면 수세미의 줄기를 자르고 거기서 분출되는 수세미 액을 받아 화장품으로 쓰곤 했다.

 

열대 지방의 고무나무의 수액은 고무 제품의 원료로 쓰이는 것이다.

그러나 지독한 술꾼들은 이러한 식물들의 수액을 이용하여 술을 담가 마셨으니 술에 대한 집착과 아이디어만큼은 실로 가상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수년 전 연변을 다녀온 한 친구가 연변에서 귀한 술을 가져 왔으니 한 잔 하자며 초청을 했다.

저녁 자리에서 만난 친구는 뜻밖에도 와인을 한 병 내놓았다. 연변을 다녀 왔다 길래 으레 도자기 술병을 내놓을 줄 알았는데 와인병이라니 싱거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친구는 그게 보통 와인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건 고로쇠 와인이라는 연변에서 나오는 만주의 토속주였다.

 

 

5월 초 나뭇잎이 막 피어나고 가지에 물이 흠뻑 오를 즈음 고로쇠 나무와 표피를 벗기면 수액이 줄줄 흘러 나온다.

이 수액은 풍당(楓糖)이라 하여 예로부터 위장병이나 폐병의 치료제로 사용되어 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리산과 백운산 고지대의 고로쇠 나무 수액이 유명하다.

 

 

만주에는 고로쇠 나무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고 한다.

그 액으로 술을 만드는 풍습이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 그것이 원래 만주족에 의하여 개발된 것인지 아니면 후에 조선족에 의해 개발된 것인지도 정확하지 않다.

어쨌든 현재는 조선족 동포가 고로쇠 와인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장백산(백두산) 일대의 고로쇠 나무에서 수액을 받아 이것을 한곳에 수집한 다음 지하 갱 속에 설치된 대형 발효조에서 2~3개월 동안 발효, 숙성시켜서 만든다고 한다.

 

고로쇠 와인의 향은 그다지 풍부하지 않았으나 부드럽게 입안을 적시는 맛이 대단히 감미로운 느낌을 주었다.

한마디로 이 고로쇠 와인은 여느 서양 와인에 비해서 맛으로는 손색이 없는 것 같았다.

이 와인이 고로쇠 즙과 같은 약효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얼큰하게 취하도록 마셨는데도 전혀 숙취가 없었고, 게다가 은은한 기품마저 느낄 수 있는 술이었다.

 

한국 사람들의 억척스러움과 어디에서나 술을 즐기는 민족성이 그 척박한 만주 땅에서조차 여실이 발휘되고 있다는 것을 생하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허니문과 벌꿀 술

술은 당으로부터 나오고 당은 태양에 의해 만들어진다.

당이란 식물의 엽록소가 태양 에너지를 받아 탄소동화작용을 통해 생성된 단당(單糖)을 말한다.

단당은 구조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포도당과 과당이다. 포도나 과일 등의 과즙에는 당이 단당 형태로 들어 있다.

사람이 단맛을 느낄 수 있는 당은 단당과 이당(二糖)인데 이당은 당분자 2개가 결합된 형태로 존재하는 당이다.

효모가 이용할 수 있는 당 역시 단당과 이당이다.

  

 

대부분의 식물은 당을 변형시켜서 사용하거나 혹은 저장한다.

곡물의 씨앗이나 감자 등에 저장된 전분은 단당이 수백만 개씩 결합된 것이다.

쌀이나 보리를 입에 넣고 오랫동안 씹고 있으면 약간의 단맛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은 씹는 동안 전분이 분해되어 당으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식물의 줄기와 뿌리, 그리고 잎도 실은 당이 변형된 형태이다.

꽃잎과 꽃술에 들어 있는 꿀 역시 당의 한 형태이다.

  

 

벌꿀술

예로부터 부드럽고 단맛이 강하여 단맛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꿀과 술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꿀은 당도가 80% 정도로서 그냥 두면 결코 부패(발효)하지 않는다.

꿀 속에 미생물이 있다 해도 매우 강력한 삼투압이 발생함으로써 미생물은 세포막이 파열되어 죽을 것이다.

그러나 꿀을 물로 희석하여 당도를 낮추어 주면 다른 당액과 마찬가지로 알코올 발효를 일으키므로 꿀술을 만들 수 있다.

  

 

북유럽의 겨울은 길고 한파는 매섭다.

그래서 북유럽인들은 예로부터 술을 많이 마셨으며 종교 의식에서는 반드시 제주(祭酒)로 사용되었다.

그 제주가 바로 벌꿀술로서 흔히 미드(Mead)로 불리우는 것이다. 미드를 만드는 방법은 물로 꿀을 희석하여 당도를 20% 정도로 낮춘 후 구연산 등의 산과 향초를 넣고 와인용 효모로 발효시키는 것이다.

미드는 꿀에 들어 있는 고유의 꽃향기와 알코올이 어루러져서 미묘한 풍미를 갖고 있다.

  

북구의 여러 나라 가운데서도 미드가 가장 유명한 나라는 노르웨이이다.

노르웨이에서는 신혼 부부가 결혼한 후 한달 동안은 이 미드를 마시는 전통적인 풍습이 있다.

오늘날 신혼 부부와 달콤한 삶을 허니문(Honey Moon: 蜜月)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신혼부부가 벌꿀주를 마시는 노르웨이의 풍습에서 유래된 것이다.

 

태양과 꽃, 그리고 달콤함이 함께 어우러진 미드. 인생의 가장 즐거운 한때에 이런 술이 함께 한다면 그 생활이 어찌 달콤하지 않으랴.

우리나라에는 신혼부부가 첫날밤 조촐한 술상을 마주하고 합환주를 마시는 아름다운 풍습이 있다.

이 합환주로 벌꿀주를 쓴다면 가정 생활이 꿀같이 달콤하고 화목해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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