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영조 때의 빙허각 이씨는 그의 명저 ‘규합총서(閨閤叢書)’에 주부가 알아야 할 살림살이 지식에 관해 썼는데 그 가운데 술 담그는 방법을 제일 앞에 썼을 정도로 술 담그는 일은 주부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요건 가운데 하나였다.
행사가 있을 때면 다른 음식은 당일 또는 2~3일 전에 준비하면 그만이지만 술은 적어도 보름 전에 담가야 한다.
더구나 술은 넉넉지 못한 양식을 할애하여 담그는 것이므로 술 담그는 법을 소중하게 여겼을 것이다.
빙허각은 음주론에서 주도에 관해 다음가 같이 언급했다.
꽃에 취하기는 낮이 마땅하며, 취하여 흥겨우면 곱게 부름이 마땅하다. 취하여 헤어질 때는 절도가 있어야 한다. 선비가 취함에는 지나친 음악을 삼가고, 정신을 잃지 않아야 하니 절주는 예(禮)요, 깨어 있음은 법이다. 대(竹)에 취함에는 여름이 마땅하며 물(水)에 취함에는 가을이 마땅하다.
빙허각은 술과 자연의 풍류를 하나로 합하여 생각했던 모양인지 유난히 꽃술에 대하여 관심이 많았다.
술 중에서도 꽃술은 꽃이 필 때를 이용해야 하므로 온갖 정성을 다 기울여야 한다.
규합총서에는 봄에는 도화주(挑花酒)와 두견주(진달래 술)를, 가을에는 국화주 담그는 방법을 설명했다.
꽃술을 담그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생화를 술밥과 같이 넣어 꽃이 술에 직접 들어가게 하는 방법과 건조된 꽃잎을 주머니에 넣어 술이 닿지 않도록 술독 내부에 매달아서 향만 배게 하는 방법이다.
앞의 방법으로 술을 담그면 꽃잎이 분해되어 향과 맛뿐만 아니라, 꽃잎의 색깔까지 우러나온 그야말로 완벽한 꽃술이 된다. 이처럼 좋은 향기와 아름다운 색깔을 가진 꽃술은 귀중한 음식 중 하나였다.
꽃술은 꽃이 가진 의미 때문에 더욱더 정취를 돋우었을지도 모른다.
빙허각의 시대에는 완고한 유교의 격식 때문에 남녀간에 애정을 표현하는 데 제약이 많았다.
심지어는 부부간에서도 남의 눈을 의식하여 담소조차 나누기가 쉽지 않던 시대였다.
이러한 시대에 꽃술은 남녀간의 정을 돈독하게 해주는 합환주로 은밀하게 애용됐을 법하다.
백화주(百花酒) 담그는 법을 살펴보자. 이른 봄부터 매화, 동백꽃, 복사꽃, 연꽃 등 온갖 꽃잎을 따서 잘 건조시켜 보관한다.
한여름에 밀기울로 누룩을 빚어 잘 보관했다가 가을에 국화가 필 때쯤 밑술을 담근다.
국화 꽃잎이 흐드러지게 피면 국화꽃잎을 하나 하나 정성스레 뽑아서 소쿠리에 담는다. 서리가 내릴 때쯤 이른 봄부터 준비해 온 백화주를 드디어 빚는 것이다.
우선 술독에 밑술과 술밥, 그리고 마른 꽃잎들과 함께 생 국화 꽃잎을 버무려 넣는다.
한 이레 후 용수를 박으면 백화향이 듬뿍 밴 술이 말갛게 괸다.
빙허각은 술이 잘 익었는지 확인하는 방법으로 밤중에 심지어 불을 붙여서 술독에 넣고 둘러보아서 불이 꺼지면 술이 덜 익었고, 불이 안꺼지면 술이 잘 익었다고 판단했다. 알코올 발효가 진행될 때에는 탄산가스가 왕성하게 발생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빙허각의 글에서는 우아한 아름다움과 함께 섬세한 관찰력이 흘러나오고 있다.
교교한 달빛이 창호를 비출 때, 용수에 괸 백화주를 떠 손수 병에 담아 술상을 내오는 사랑스러운 여인의 정성을 상상해 보라.
그 딱딱하고 엄격하기만 했던 조선 시대의 규방에서도 이처럼 멋진 풍류가 눈에 띄지 않게 면면히 이어져 온 것을…….
요즘은 모든 물자가 흔해서 귀한 것을 구하고 아끼는 소박한 재미가 옛날보다 훨씬 덜하다.
음식도 필요할 때 바로 살 수 있으므로 직접 술을 담가 먹는 일은 극히 드물다.
가을에 국화 꽃잎이나 늦은 봄에 흐드러지게 피는 아카시아 꽃잎을 한아름 따서 손수 양조하여 좋은 사람과 함께 나누어 마신다면 인생을 사는 또 다른 맛과 멋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온 산에 눈이 덮이고 날씨가 추울 때일수록 소나무의 푸르름이 한결 돋보인다.
소나무 가운데서도 특히 우리나라의 적송은 그 의젓한 자태로 주변의 풍광까지도 빼어나게 치장해 준다.
소나무는 어느 산에나 다 있어서 우리에게 친근함을 느끼게 해줄 뿐 아니라 예로부터 우리 민족의 식단을 장식하는 재료의 하나로 역할을 해왔다.
추석 때 솔잎을 따서 시루 밑에 깔고 송편을 찌면 솔향기가 그대로 배어 한층 입맛을 돋운다.
춘궁기를 맞아 먹을 것이 없을 때는 소나무의 속껍질을 벗겨 먹기도 하였다.
거기에 눈썰미 있는 규수들이 소나무를 술 빚는 데 쓰기도 했으니 나라의 나무(國木)를 정한다면 소나무로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 아닐까 싶다.
소나무 술에는 송절주와 송순주가 있다.
송절주는 멥쌀로 빚은 밑술에다 소나무 가지의 마디마디를 잘라 푹달여 낸 물로 덧술을 담근다.
덧술을 담글 때는 멥쌀밥을 밑에 놓고 찹쌀밥을 위에 놓는다.
봄에는 진달래꽃을, 가을에는 국화꽃을 위에 얹고 겨울에는 유자 껍질을 액에 잠기지 않을 정도로 달아매 주면 은은한 솔 향기와 꽃향기가 어우러져 기이한 맛을 낸다.
송절주는 원기를 보하며, 풍과 담을 치료해 주고 팔다리를 못 쓰던 사람에게도 신기한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송순주는 소나무 순을 이용하여 만든 술이다.
봄에 소나무의 새순이 나오면 이것을 잘라서 잘 다듬어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 낸 후, 밑술에 버무린 술밥과 한켜씩 번갈아 안친다.
이때 솔순을 지나치게 삶으면 솔 향내가 빠져나가고, 너무 살짝 데치면 쓴맛이 심하게 된다.
한 이레쯤 지난 후 소주를 부어 익힌 후에 용수를 박아 맑은 술을 뜨면 된다. 송순주도 약용으로 쓰이는데 알코올 도수가 높아서 보존성이 특히 좋다.
요즘은 솔눈으로 만든 음료수나 솔잎가루 등 소나무를 이용한 건강 식품이 속속 개발되고 있지만, 소나무를 많이 심어 산림 훼손이 되지 않게만 한다면 솔술을 한국 고유의 식품으로 삼아도 안될 리 없다. 서양에 노간주 열매로 만든 진(Gin)이 있듯이 우리나라에는 일찍부터 솔술이 있었던 것이다.
소나무와 함께 이를 이용한 민속주도 함께 보존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가을의 저녁, 오래 살기를 기원하며 마시고 싶은 술이 있다.
바로 일백세까지 살게 한다는 백세주(百歲酒)이다. 백세주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옛날 한 선비가 길을 가다가 어느 마을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마을 정자나무 밑에 한 노인과 한 청년이 있었는데, 청년이 회초리로 수염이 허연 노인의 종아리를 때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선비는 깜짝 놀라 벽력같이 청년을 꾸짖었다.“어찌 젊은 것이 노인을 때리는고. 천벌을 받을 일이로다.”
그러자 청년이 대답했다.
“이 아이는 내가 여든에 본 자식인데 이 약을 먹지 않아 나보다 먼저 늙었소.”
선비는 얼른 말에서 내려 그 청년에게 절을 하고 약의 내력을 물었다. 청년은 백세주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그 비방을 일러 주었다.
그리하여 그 선비는 신비한 백세주를 세상에 전하게 되었다.<지봉유설>
백세주에 들어가는 약재는 거의가 강장 보양제로 알려진 것들이다.
그 약재들 가운데 하수오(何首烏)는 간장과 신장을 보호하며 혈액 순환을 좋게 하는 효과가 있는데 이 약재에 얽힌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당나라 때 한 도인이 있었는데 그는 나이가 60에 가깝도록 혼자 살았다.
그가 우연한 기회에 어떤 약재를 7일 간 복용했는데 그때부터 정기가 동하여 아내를 얻고 자식을 많이 두었다.
그는 그후로도 약재를 장복했더니 100세가 넘도록 검은 머리가 그대로 있었다는 것이다. 그후 이 약재는 하수오라 불리게 되었다.
(하수오는 얼마전 큰 파동이 있기도 하였다.)
그 밖에 구기자, 숙지황 등의 보약재를 넣고 술을 익히는데 주원료는 찹쌀이다. 백세주의 제조법은 다음과 같다.
찹쌀을 깨끗이 씻어 물기가 없게 고두밥을 지어 말린다. 완전히 말린 다음 같은 양의 누룩 가루를 섞은 후 약재를 넣는다.
이때 복령, 음양곽 등의 약재를 넣어 강장의 효과를 높일 수도 있다. 여기에 물을 적당히 부은 다음 독을 밀봉하여 땅속에 묻는다.
그 상태로 약 30~100일 간 발효시키면 맑은 약주가 된다. 이것이 바로 백세주이다.
(국순당에서 백세주를 시판하여 큰 인기를 끌기도 하였다.)
백세주가 얼마나 큰 약효를 지니고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장수하고 싶은 사람들의 소망을 달래 주는 술이라니 나름대로 애교가 있지 아니한가. 추석에 고향에 들러 노부모님의 얼굴에 패인 주름살을 보면 한 세대 후의 자신의 앞날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백세주를 불로장생의 약으로 여기기보다는 그저 짧은 인생의 덧없음을 깨닫게 하는 술이라 생각하며 그 맛을 음미한다면 이 술에 얽힌 전설은 새롭게 우리 곁에 다가오지 않겠는가.
한국의 청주는 중국의 황주와 함께 곡자(누룩, 곰팡이 덩이)를 사용하여 제조한 유서 깊은 술이다.
백제인 ‘인번(仁番)’은 일본의 나라 시대에 술(청주) 제조법을 전수하였다.
옛시에 “청탁(淸濁)을 불문하고 즐겨 마신다.”는 구절이 있는데, 바로 청주와 탁주를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청주와 탁주는 그 뿌리가 같은 것이다.
술독에 용수를 박아 놓으면 맑은 술이 괴는데 그것을 청주라 하고 나머지 중 찌꺼기를 대강 체로 쳐서 받아낸 술을 막걸리라 한다.
제사나 어른의 생신 등이 다가오면 쌀로 고두밥을 짓고 누룩과 버무려 항아리에 넣고 밀봉한 후 아랫목에 놓고 이불을 덮어 5~6일 두는 것이 전통적인 청주 제조법이다.
청주는 쌀로 만들기 때문에 쌀눈에 있는 성분의 영향으로 숙취를 많이 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 전통 청주는 따뜻하게 데워서 마셨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도정 기술이 발달하여 쌀눈을 완전히 제거하고 곡자와 효모를 적절히 조화시켜 발효하여 굳이 데워서 마시지 않아도 되는 이른바 냉청주를 개발하였다.
일본에는 약 2,000여 개의 청주 공장이 있다. 그 중 일제 시대에 우리나라에 많이 소비되었던 정종(正宗)이 아예 청주 이름처럼 된 적도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도 청주를 만드는 제조회사가 있으며, 유명 제품으로는 백화 수복, 청하, 국향이 있다.
그 제품들의 특색을 보면, 명절때나 제사 때는 의례히 찾는 백화 수복은 가장 전통주에 가까운 누룩내가 은은하다.
데워 마시는 전통을 깬 냉청주 청하는 한식과 일식 음식에 잘 어울려 시원하고 깔끔하며 목에 넘길 때의 감촉은 비단처럼 부드럽다.
국향은 장기간의 저온 발효로 양조하여 다양한 향이 풍부한 고급 청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