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의 종주국으로 자처하는 독일에는 1,800여 개의 맥주 양조장이 있다.
그 중에는 레벤 브로이 같은 큰 회사도 있으나 대부분은 우리나라의 막걸리 양조장처럼 소규모로서 각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알프스로부터 발원하는 독일의 강들은 대부분 석회분의 함량이 높아서 음료수로는 적합하지 않다. 그 때문에 예로부터 맥주를 음료수 대용으로 마시지 않았는가 생각된다. 따라서 ‘독일의 대표적인 맥주가 이것이다’라고 말하기는 대단히 힘든 일이다.
독일의 맥주 산업이 발전하는 데는 16세기 바이에른 공국의 빌헬름 4세의 양조 정책이 큰 기여를 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맥주는 수도원에서 제조되었다. 빌헬름 4세는 양조권을 장악하고, 공국의 직할 양조장인 ‘호프 브로이 하우스’를 설립했다.
그는 이른바 ‘맥주 순수령’을 내렸는데 그 내용은 ‘맥주의 원료로는 보리와 호프, 그리고 물만 사용하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각 지방의 맥주에는 갖가지 향료 식물이 사용되었는데 이 명령으로 인하여 호프가 고정 원료로 사용되게 된 것이다.
필자는 독일인 친구로부터 파티에 초대받은 적이 있는데, 그는 10여 종의 독일 맥주를 내놓았다.
아주 쓴 것부터 쓴맛이 적은 것, 색깔이 짙은 것부터 옅은 것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의 다양함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독일인들은 자기들의 맥주가 세계에서 으뜸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독일인들은 일인당 연평균 300병(150리터)의 맥주를 마신다고 한다. 뮌헨에서는 매년 옥토버 페스트(10월의 축제)가 열린다.
이 축제는 1810년에 바이에른의 왕비 테레사를 기념하여 처음으로 개최되었는데, 그후로 연례적인 민속 행사가 되었다.
축제의 중심지는 ‘테레사 가든’이라고 불린다. 옥토버 페스트는 원래 승마, 사격, 브라브 밴드, 민속 춤 등의 경기와 말, 소 등의 가축 품평회가 열리는 지방 축제였다. 이것이 100여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맥주 페스티발로 정착된 것이다.
매년 9월 20일 정오, 뮌헨 시장이 첫잔을 드는 것으로 시작되는 옥토버 페스트는 10월 첫 번째 일요일까지 계속된다.
이 축제에 참가한 500만여 명의 사람들은 마치 코끼리가 물을 들이키듯 약 500만 리터의 맥주를 마셔댄다.
옥토버 페스트에 필적할 만한 슈투트가르트의 칸스타트 축제는 1818년부터 개최되었다.
슈트트가르트에는 독일에서 가장 넓은 장터가 있는데 4,500명분의 좌석이 있는 4개이 천막에서 맥주 파티가 벌어진다.
독일에서는 전통적으로 1리터짜리 대형 도자기잔으로 술을 마셨는데 60년대부터는 500ml, 400ml, 300ml, 250ml 등의 유리잔이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프랑스에 노천 카페가, 영국에는 펍(Pub)이 있는 것처럼 독일에는 비어 가든이 있다.
뮌헨 한 곳에만도 100여 개의 비어 가든이 있는데, 뮌헨 사람들은 이른 저녁부터 나무 밑에 놓여진 원탁과 의자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서 맥주를 마신다.
겨울철에는 물론 실내의 비어홀에서 마시는데 이 비어 홀에는 언제나 브라스 밴드의 경쾌한 선율과 함께 왁자지껄한 생기가 넘쳐 흐른다.
영국과 아일랜드에서는 세계 대부분의 맥주 제조 기법이 하면 발효식의 담색 맥주로 변화된 것과는 대조적으로 아직도 상면 발효식 에일 맥주가 주로 음용되고 있다. 에일 맥주는 상온(15~25°C)에서 양조되므로 당연히 맛과 향도 상온에서 가장 좋다.
따라서 영국에서는 찬 맥주가 그리 흔하지 않다.
영국 맥주의 맛에는 뭔가 독특한 요소가 있어서 적응하기에는 다소 경험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이상하게 느껴지지만 일단 그 맛에 젖어 들면 마치 김치처럼 그 맛을 잊기 어려운 것이 바로 영국식 에일 맥주이다.
영국의 펍에 가보면 우선 맥주의 종류가 매우 다양한 데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조그마한 동네 펍이라 하더라도 보통 한 다스 이상의 다양한 맥주를 보유하고 있다. 스타우트, 에일, 라거에 각각 마일드나 비터가 앞에 붙어서 ‘비터 스타우트’, ‘마일드 에일’ 등 그 종류가 실로 다양하다.
기네스 북 때문에 널리 알려진 기네스 맥주는 짙은 초콜릿 색깔의 스타우트를 고집하고 있다.
1759년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설립된 기네스 맥주는 색깔이 아주 짙은 농색 맥주로서 맛이 텁텁하며 향기가 매우 짙다.
기네스 맥주가 알려지면서 스타우트는 처음으로 영국에서 전국적으로 인기 있는 맥주가 되었는데, 그 이전에는 각 지역마다 독특한 스타일의 맥주가 있었다.
오늘날 스타우트는 포터(Porter)라고도 불린다.
워낙 이 맥주가 인기가 있어서 맥주 배달인이 오면 기다리던 사람들이 ‘헤이 포터’하고 부른 데서 아예 맥주의 이름이 포터가 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포터에는 호프를 많이 넣기 때문에 무척 쓴맛이 난다.
그런데도 포터는 아일랜드 사람들의 생활의 일부분이 되다시피 했다.
아일랜드의 유명한 문인 돈레비(Donleavy)는 “내 죽으면 포터의 배럴이 되어 더블린의 모든 펍으로 포터를 나르겠노라.”라고 노래했다.
영국에서 맥주 판매량이 가장 많은 바스사는 담색 에일을 생산하고 있다.
1882년 마네가 그린 유명한 술집(The Bar at the Foliera-Bergeres)그림을 보면 바스 맥주가 진열되어 있다.
바스사의 사람들은 샴페인과 함께 진열된 바스의 담색 에일이야말로 세계 최고의 품질이라고 뽐낸다.
영국의 맥주집은 펍(Pub)과 라운지(Lounge)로 구분되어 있다. 하나의 술집이 두 파트로 나뉘어져 경우가 일반적이다.
펍과 라운지는 특별한 차이는 없으나 대개 여자 친구와 함께 술집을 찾을 경우는 라운지에 앉아서 술을 마시고 남자들끼리 술을 마시는 경우는 펍에 서서 술을 마신다.
에일 파티(Ealo) : 중세의 영국에서는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린 다음 하객들이 전부 신부집(Bryd)에 모여서 에일 파티(Ealo)를 했다. 그 때문에 신부와 에일이라는 두 개의 단어가 합성되어 결혼식(Bridal)이라는 단어가 생겨났다고 한다. 유럽에서 가장 보수적이며 전통 지키기를 좋아하는 영국 사람들은 오늘날까지도 에일을 즐겨 마시고 있다.함유된 여성 호르몬의 작용 때문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
영국의 전통 펍에 가면 포켓볼이나 다트가 있어 술을 마시면서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 많다.
영국 정부는 오래전부터 주류 제조회사들과 함께 ‘센스 있는 음주’ 캠페인을 벌여 왔다. 그 가운데 하나가 술을 천천히 마시자는 것이다.
영국의 펍들은 대개 맥주 제조회사들이 소유하고 있다. 제조회사들은 정부의 시책에 호응하여 펍에다 그러한 놀이 기구들을 설치함으로써 폭주를 막는 데 일조를 하였다고 한다.
5월에서 10월까지 사이에는 영국의 각지에서 토산물 품평회가 열린다.
이러한 품평회는 사이먼과 가펑클(Simon & Garfunkel)이 히트시킨 노래 스카브로 페어(Scarbrough Fair)를 연상시킨다.
수만평은 족히 됨직한 넓은 광장에 수십개의 대형 텐트가 쳐지고 각종 농산물, 동물, 수제품 등이 전시, 판매된다.
이때 갖가지 음식과 함께 필수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맥주다. 거품이 유난히 많은 커다란 맥주 잔을 들고 토론을 벌이는 영국인들의 정겹고 활기찬 풍경이 선하게 떠오른다.
세계의 맥주 애호가들은 체코의 맥주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
체코의 필즈너(Pilsner) 맥주는 오늘날 전세계 담색 맥주의 근원이 되었고, 버드바(Budvar) 맥주는 세계에서 가장 판매량이 많은 브랜드인 미국의 버드와이저(Budweiser)의 시조나 마찬가지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체코에서는 9세기 무렵부터 호프가 재배되었다. 체코의 호프는 세계에서 가장 품질이 우수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어서 세계 각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13세기 체코의 왕이었던 웬체슬라스는 수도원에서만 제조될 수 있는 맥주를 일반인도 양조할 수 있도록 교황 인노센트 4세로부터 허가를 얻어냈다.
이때부터 체코의 프라하와 블타바(Vltava)강이 맥주의 고향이 된 것이다.
보헤미아의 맥주집은 1600년경부터 존재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전 유럽에서 유명한 존재였다.
이 맥주집들은 각기 보리나 호프 농장을 가지고 있는데 거기서 수확한 작물을 대형 양조장에다 위탁 제조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른바 맥주 분업이 시작된 것이다.
여기에서 근대 대형 맥주 공장의 효시를 찾을 수 있다.
보헤미아의 선술집에는 유명한 ‘후랜타스 룰(Franta’s Rull)’이라는 것이 있을 정도로 맥주가 사랑받고 있으며 대중화되어 있다.
후렌타스 룰 중 하나는 ‘마음껏 먹고 취한다면 쉬이 죽은들 어떠리’라는 것이다.
보헤미아 맥주의 종류는 아주 다양하다.
밀, 보리, 귀리에다 호프, 쥬니퍼, 감귤 등을 넣어 향과 맛을 낸 것이 있으며, 숙성 기간도 긴 것, 짧은 것이 있고 색깔 역시 아주 옅은 것에서 심지어는 붉은 것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이다.
필젠 맥주의 특징은 경도가 매우 낮은 물을 사용하는 관계로 맛이 담백하고 호프 향이 짙다는 점이다.
체코의 맥주는 대체로 탄산가스의 양이 많으며 따라서 거품이 매우 짙고 오래 간다. 체코인들은 거품을 ‘맥주의 혼’이라고 부른다.
체코의 선술집에는 여러 종류의 머그잔이나 도자기, 혹은 목제의 손잡이가 달린 뚜껑이 있는 잔이 수십 개씩 진열되어 있다.
이것들은 단골 손님들의 개인 소유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체코인들은 음식을 먹을 때면 항시 맥주를 곁들인다.
체코는 호프와 맥주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나라로서, 체코인들은 일인당 연간 약 340병(170리터)의 맥주를 마시고 있다.
따라서 체코야말로 가히 세계 최고의 맥주 애호국이라 할 수 있다.
벨기에의 브뤼겔 지역에서 생산되는 태고의 야생 맥주는 전세계 맥주 애호가들의 호기심을 발동시키고 있다.
16세기 말엽 이 지역에서 활동한 화가 브뤼겔의 ‘농부의 춤’은 바로 이곳의 민속 맥주를 항아리만한 잔으로 마시면서 추는 춤을 그린 것이라고 한다.
벨기에 관광국이 지정한 브뤼겔 루트를 따라가면 이곳저곳에서 조그만 양조장을 만나게 되는데 여기에서 바로 그 유명한 램빅(Lambic) 맥주들이 생산되는 것이다.
램빅 맥주는 현대적인 개량된 제조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파스퇴르가 미생물의 존재를 확인하기 이전의 전통적인 맥주 제조 방법을 아직까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즉 맥즙을 대형 목제 발효조에 넣고는 그대로 방치해 두는 것이다.
천장이나 벽에는 케케묵은 자루들이 제멋대로 걸려 있는데 아마도 이것들이 미생물의 공급원이 될 것이다.
이 양조장들의 발효실은 수백년 동안이나 청소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루라도 뒤질세라 극심한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 오늘날, 램빅 맥주 양조장 주인은 그의 발효실에 있는 먼지 하나라도 변화할까봐 노심초사하고 있으니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램빅 맥주는 자연 발생적으로 발효를 일으키기 때문에 발효기간이 매우 길다.
1년 발효된 맥주는 아직도 젊다고 하며 2년 이상된 맥주라야 비로소 마시기 시작한다.
램빅 맥주의 대표격인 팀머만즈(Timmermans) 양조장에는 75년 동안 숙성시킨 발효조도 있다.
램빅 맥주는 다양한 색깔로 제조되는데 발효조에 과일을 넣어 과일의 맛, 향, 그리고 색깔이 우러나게 하는 것도 있다. 이 과일 맥주를 구에제(Gueze)라 한다.
예컨대 체리 맥주는 7~8월경 수확한 체리 50kg을 250리터의 램빅 맥주에 첨가하고 1년 이상 더 숙성시킨다.
색깔 역시 갈색, 분홍색, 짙은 적색 등으로 만들어서 소비자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다.
이들이 수백년 동안이나 전통을 지켜 올 수 있었던 것은 지역 주민들의 토속주에 대한 사랑과 램빅 제조업자들의 변함 없는 장인 정신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각국 사람들은 20세기 초까지 수많은 양조장을 건설했다.
그러나 1920년부터 시작된 미국의 금주령은 모든 주류 업계를 파산으로 몰아넣었다. 1933년 말의 금주령 해제를 기점으로 하여 미국의 맥주업계에는 몇몇 거대 기업이 탄생하였다.
버드와이저(Budweiser)
미국의 대표적인 맥주회사는 버드와이저(Budweiser)를 생산하는 안호이저 부시(Anheuser-Busch)이다.
이 회사는 체코의 버드바(Budvar)를 모델로 색이 옅고 향과 맛이 연한(Light) 맥주를 생산하여 대성공을 거두었다.
버드와이저의 생산량은 연 1,070만km로서 1995년 세계 맥주 총생산량의 8.3%를 점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 맥주 총생산량의 약 7배에 달하는 양이다.
하이네켄(Heineken)
네덜란드의 하이네켄(Heineken)사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맥주회사이다.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 본부를 둔 하이네켄사는 1864년에 창립되었다.
창립자인 하이네켄은 맥주의 품질은 무엇보다도 효모의 품질과 정확한 발효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믿었다.
그는 1879년 파스퇴르 연구소로부터 기술지도를 받아 새로운 효모를 육종하였다. 그후 하이네켄의 품질은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게 되어 1890년경에는 이미 동남아시아로 진출하였다.
하이네켄이 이른바 최초의 다국적 맥주회사가 된 것이다.
1934년 미국의 금주령이 해제되자 하이네켄은 미국으로 상륙하여 시장을 넓혀 갔다.
하이네켄은 ‘최고 품질의 하이네켄은 세계 어디서나 만날 수 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로 세계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때는 동양 맥주가 기술제휴를 해서 국내에서 생산한 적이 있다.
칼스버그(Carlsberg)
다국적 맥주회사로서 근대적인 맥주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큰 회사가 바로 덴마크의 칼스버그(Carlsberg)사이다.
덴마크의 코펜하겐에 본사를 둔 칼스버그사는 1801년 야콥센에 의하여 창립되었다.
그는 ‘과학기술의 존중’을 사시로 삼고 최고 품질의 맥주제조를 위한 미생물학적 연구를 지속했다.
그는 칼스버그 연구소를 창설하여 덴마크의 과학기술 발전에도 지대한 공로를 남겼다. 칼스버그 연구소의 에밀 한센은 맥주 효모의 순수 배양법을 정립하여 세계 여러나라로 전파하였다.
칼스버그 맥주는 호프를 약간 많이 첨가한 향미가 진한 맥주로서 1995년에는 세계8위의 생산량을 기록하였다.
칼스버그는 최근 중국, 홍콩, 태국, 베트남 등의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하면서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밀러(Miller)
밀러 맥주가 필립 모리스에게 흡수 합병될 때까지는 사실 가장 전통적인 구세대 맥주였다.
1855년 프레드릭 밀러가 맥주 양조장을 세웠을 때 Miller’s High Life라 하여 다른 맥주에 비해 보다 유럽풍의 호프를 많이 쓴 맥주였다.
그러나 마케팅의 귀재 필립 모리스가 인수한 후 라이트(Light) 맥주를 개발하여 대 히트를 쳤다. 미국인들이 비만에 신경을 쓰는 것을 겨냥한 것이었다.
라이트 맥주는 물을 많이 넣은 약한 맥주로 유럽의 완전 발효(Dry)와는 비교가 안되는 맥주다.
그러나 필립 모리스의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밀러 라이트(Miller’s Light)는 미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매우 인기 있는 제품이 되었다.
우리나라에도 미군의 PX를 통해 들여오기 시작해 한때 인기 있는 맥주로 자리 잡았다. 요즘 유행하는 돌려 따는 맥주의 효시라고 할 수도 있다.
맥주 전쟁
1980년대 중반까지 일본의 맥주시장은 기린 맥주의 독무대였다.
기린 맥주의 시장 점유율은 70%에 가까웠고 아사히, 삿포로, 산토리 등이 약 30%를 나눠 가지고 있는 형국이었다.
이런 시장 지배 구조는 수십년 동안에 걸쳐 굳어진 것으로 아사히 맥주가 신제품인 슈퍼 드라이(Super Dry)를 내놓을 때까지는 어느 누구도 기린 맥주의 아성을 넘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전통적인 라거 맥주에는 소량(1%미만)의 당이 발효되지 않을 채고 남아 있다.
그런데 드라이 맥주란 이 당을 완전히 발효시킨 맥주라는 뜻이다. ‘드라이’란 술의 맛을 평가하는 용어의 하나로서 당, 즉 단맛(Sweet)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다.
아사히가 내놓은 드라이 맥주가 선풍을 일으키면서 아사히 맥주의 시장 점유율은 80년대 중반의 7%로부터 97년에는 38%까지 수직상승했다.
기린 맥주의 시장 점유율은 97년 초에 들어 40% 미만으로 떨어졌다. 이것은 일본 주류사의 일대 혁명과 같은 사건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소비자들의 기호 변화에 발맞추어 가는 신제품 개발전략과 함께 아사히의 뛰어난 광고전략이 숨어 있었다.
80년대에 들면서 건강 열풍이 일본 열도를 휩쓴 것도 드라이 맥주의 성공에 한몫을 했다.
당시 일본인의 건강에 대한 관심, 특히 선진국병이라고 하는 성인병에 대한 일본인들의 관심은 매우 높았다.
성인병의 가장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가 비만인데, 맥주를 즐겨 마시는 사람들 중에는 배가 나온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그 원인이 맥주에 들어 있는 당 때문이라는 그릇된 소문이 술꾼들 사이에 상식처럼 퍼져 있었다.
물론 맥주에 남아 있는 당도 비만의 한 원인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비만의 원인을 제공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드라이 맥주나 보통의 라거 맥주 사이에 차이가 거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이 섭취한 음식물은 알코올이 분해되는 동안에 간에서 거의 전부가 지방으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술의 종류를 불문하고 과도한 음주를 하면 비만이 될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어쨌거나 아사히의 드라이는 사람들의 건강에 대한 인식의 변화에 따라 세계적인 마케팅 성공 사례를 남기게 된 것이다.
이와 유사한 사례가 우리나라의 맥주 시장에서도 벌어졌다.
80년대에 접어들어 우리나라에서는 수질과 대기의 오염 등 환경문제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와 함께 무공해 식품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폭발적으로 높아졌다.
이러한 사람들의 인식 변화에 편승하여 1992년 조선 맥주에서는 신제품을 개발하여 시장에 내놓으면서 무공해 지하수로 양조한 맥주라는 홍보 전략을 가지고 대대적으로 광고 선전을 했다.
당시 한국의 맥주시장은 80년대 중반의 일본처럼 OB가 70%를 점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지하수 맥주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 한국의 맥주 시장은 신제품 경쟁으로 혼전을 겪게 되었다.
사실 양조 용수로 어떤 물이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세계에서 생산되는 대부분의 술은 지표수로 빚어진다.
맥주의 경우는 더욱더 그러하다. 그리고 지하수가 양조 용수로서 지표수보다 더 낫다는 아무런 근거도 없다.
오히려 풍부한 양질의 지표수야말로 맥주 산업의 입지 조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건이 되고 있다.
이것은 세계 굴지의 맥주 공장의 입지를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사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