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맛과 향기
술의 질은 사람이 느끼는 순서대로 향과 맛, 그리고 뒤끝으로 평가될 수 있다.
알코올 발효는 효모가 당(糖)을 에틸 알코올로 변환시키는 과정이다. 이때 새로 생기는 물질의 대부분은 물론 에틸 알코올이지만 부산물로서 수백 가지 미량 성분들이 생성된다. 메틸 알코올, 아세트 알데히드, 에틸 에스테르 등이 그것들이다.
술에는 수백 가지 향기 성분이 있는데 사람이 느낄 수 있는 농도는 모두 다르다. 이 지각(知覺) 농도는 대개 PPM(백만 분의 일) 단위의 극미량이다. 그런데 술의 향과 맛은 이 미량 성분들의 조합에 의해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에틸 알코올은 휘발성으로 인한 자극 이외에는 무색, 무미, 무취이기 때문이다.
향과 맛을 표현하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같은 술을 마시고도 사람마다 다른 표현을 쓴다. 객관적인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가령 신맛이라 하면 맛을 보는 사람이 신맛을 느낀 때의 경험이 다 다르기 때문에 같은 말을 사용하였다 하더라도 실제로는 다른 내용일 수 있다. 김치의 신맛과 식초의 신맛, 그리고 사과의 신맛이 다 다른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많이 쓰이는 용어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향기
- 향기로운(Fragrant): 과일 향, 꽃 향
- 톡 쏘는(Pungent): 자극적이고 휘발성이 큰, 날카로운 향, 기름 냄새(Oily), 약 냄새(Medicinal), 곰팡이 냄새(Mouldy), 나무 냄새(Woody)
맛
- 단맛(Sweet), 단맛이 없을 때(Dry)
- 신맛(Acidic, Sour)
- 쓴맛(Bitter)
입에서의 느낌
- 부드러운(Smooth, Silky)
- 거친(Harsh)
이러한 향과 맛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전문가들은 술의 질을 주로 후각을 통하여 평가한다. 왜냐하면 연속해서 몇 개의 샘플을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은 냄새를 맡는 방법밖에 없기 때문이다.
맛은 가장 중요한 요소이지만 하나의 샘플을 감정하면 술이 입 속에 묻기 때문에 다음 샘플의 평가에 영향을 미친다.
후각은 술의 품질을 관리하는 데 필수적인 잣대가 된다. 여러 가지 술이 최종 제품으로 탄생되기 전에 블렌딩된다.
예를 들어 포도주는 포도의 품종에 따라 혹은 수확연도에 따라 원료의 질이 달라지므로 일정한 품질의 제품을 내기 위해 서로 다르게 양조된 것을 섞는다. 비슷한 이유로 위스키나 브랜디도 블렌딩을 한다.
블렌딩을 하는 사람을 마스터 블렌더라고 하는데 이들은 때에 따라 하루에 수십 종류의 술을 감정해야 한다. 즉 그 회사 술의 품질은 마스터 블렌더의 코 끝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블렌더들은 신선한 공기가 잘 소통되는 그늘진 곳에 별도의 사무실을 갖고 있다. 그들이 샘플을 감정하는데 영향을 줄 요소를 없애기 위해서이다.
술의 향기를 잘 모으기 위하여 냄새 맡는 잔은 튜울립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휘발성이 강한 성분이 먼저 코를 자극하고 숨을 들이킴에 따라 전반적인 향이 코로 흡입된다. 마스터 블렌더는 머리에 기억되어 있는 냄새와 견주어 향을 판별하고 제품의 배합 공식을 정한다. 블렌더는 자신만의 고유한 경험과 판단으로 술을 감정하므로, 사람들은 블렌더들을 예술가라고 부른다.
과학 기술이 발전할수록 그 고도의 기술로도 넘보지 못하는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1년에 한번 꽃을 피우는 난을 지극 정성으로 기른다. 꽃 한번 보고 향내 한번 맡으려고…….
미식가들은 맛난 음식을 먹으려고 수천리를 간다. 술도 그 향과 맛을 천천히 음미하며 마시면 술의 깊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