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병과 술독
애주가들은 술을 담는 그릇에도 정성을 쏟았으니 수천년 전의 묘지에서도 종종 술병이 출토된다.
술병은 다른 그릇과 같이 목기, 토기, 청동기, 고급 금속(금, 은)기, 도자기, 유리 등의 재료로 다양하게 발달되었다.
술병은 단지 술을 따르는 용도뿐만 아니라 실내 장식용으로 많이 사용되어 왔다.귀한 손님에게 술을 대접하는 관습과 함께 술병이나 술잔도 예술적으로 품위있게 제작하고 장식했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전통이 이어져 동서양을 막론하고 응접실 장식장에는 술병이 몇 개씩 진열되어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유리병이 대량 생산된 이후에도 술 제조회사에서는 수시로 특별한 용기를 개발하여 역사적 의미를 기념하거나 소비자들을 유혹하였다.
영국 여왕의 즉위에 맞춰 개발한 로열 살루트나, 귀족적인 품위를 나타내는 나폴레옹 등의 병이 그러한 예이다.
술을 마시지 않는 여성들도 한정량으로 발매되는 술(병)을 데커레이션용으로 수집하는 일이 허다하다. 술제조업계에서는 이러한 요구에 다양한 미니어처(Miniature)를 생산하였다. 이렇게 되다 보니 미니어처 수집이 취미인 사람들도 많아졌다.
술병의 모양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흉내냈다. 집, 바이올린, 종, 범선, 자동차, 사람, 물고기, 펭귄, 말, 꿩, 대포, 주전자, 왕관, 기차, 지구본 등등. 술병은 참으로 좋은 장식물이다.
서양 술병의 모양은 기본적으로 주둥이가 긴 용기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나 중국, 일본에는 손잡이와 뚜껑이 있는 주전자 모양의 도자기 술병을 많이 사용했다.
동양에서는 수수와 쌀을 주원료로 술을 빚었는데, 이런 원료로 만든 술은 데워서 마셔야 제맛을 냈다. 주전자형의 술병이 발달한 이유가 이런 데 있지 않을가 생각된다.
반면 서양 술은 와인을 제외하고는 보리를 주원료로 맥주, 위스키 등을 만들었다.
보리로 만든 술은 차게 해서 마시는 관습이 있으므로 술병을 단순한 모양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보리는 추운 겨울을 지내면서 자라므로 찬 기운이 더 어울리고, 수수나 쌀은 여름에 자라므로 더운 기운이 더 잘 어울린다 한다.)
술 만드는 용기에는 큰 항아리나 목통이 쓰였다. 동양에서는 청주, 황주, 탁주 등의 술을 주로 항아리로 담갔다.
중국에서는 오늘날에도 백주를 담그는 데 큰 독을 사용하고 있다.
서양에서는 맥주, 와인, 증류주의 발효시에는 소나무로 만든 대형 통을 사용했고 와인이나 증류주의 숙성시에는 오크통을 사용하였다.
스테인리스 스틸이 발명된 이후에는 발효시에 스테인리스 용기를 주로 사용하나 전통적인 고급 술을 만드는 업체에서는 아직도 목통을 사용한다.
증류주를 숙성하는 데 서양에서는 오크통을 사용하고 중국에서는 항아리를 사용하는데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술독은 주로 기능적으로 발달된 반면 술병은 예술적으로 발전하였다. 술병과 술잔은 더욱 좋은 술맛을 내게 하고, 보다 정감 어린 공간을 연출하는 애장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