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의 술과 낭만

君不見,

黃河之水天上來

奔流到海不復回

君不見,

高堂明鏡悲白髮

朝如靑絲暮成雪

人生得意須盡歡

莫使金樽空對月

天生我材必有用

千金散盡還復來

烹羊宰牛且爲樂

會須一飮三百杯

岑夫子,丹丘生

將進酒,君莫停

與君歌一曲

請君爲我側耳聽

鐘鼓饌玉不足貴

但愿長醉不愿醒

古來聖賢皆寂寞

惟有飮者留其名

陳王昔時宴平樂

斗酒十千恣歡謔

主人何爲言少錢,

徑須沽取對君

五花馬, 千金裘,

呼兒將出換美

與爾同銷萬古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황하의 물이 하늘에서 내려 세차게 흘러 바다에 이르면 다시 돌아오지 못함을!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고대광실 맑은 거울 속에 비친 슬픈 백발을!

아침에 까만 비단실 같더니 저녁에는 눈처럼 희어진 것을!

인생은 뜻대로 될 때에 마냥 즐겨야 할지니,

황금 술단지를 달 아래 그냥 두지 마소.

유명한 이태백(이백)의 ‘장진주(將進酒)’이다.

인생은 덧없고 뜻대로 되기 어려우니 술을 한 잔하자는 권유다. 이백은 외향적이며 낭만적이면서도 많은 시름이 있었던 것 같다.

‘만고의 시름을 씻어 내리려 연거푸 백 항아리의 술을 마시세.’

그는 술로 인생의 괴로움을 달랬다.

그는 술을 자주 마셨고, 술에 관한 시를 많이 지었다.

그래서 훗날 사람들은 이백이 술에 취해 오강(烏江)에서 뱃놀이 하다가 강에 비친 달을 잡으려 하다 빠져 죽었다고 믿었다.

이백의 시는 마치 구름이 천변만화의 모양을 연출하듯 자연스러우면서도 문장이 아름답다.

그의 시는 수많은 언어로 번역되어 동서양의 수많은 시인과 예술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백은 701년 당나라 측천무후 시절에 중앙아시아의 쇄엽성(현 카자흐스탄지역)에서 태어났다.

그가 다섯 살 때 사천성으로 이사를 하여 그곳에서 성장하였다.

그는 문장이 뛰어나고 성격이 활달하여 평생 벼슬길에 나서려고 노력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742년 현종의 부름을 받아 일종의 비서직인 한림학사로 기용됐다.

그는 황제의 문서를 대신 작성하는 등 현종의 아낌을 받았으나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환관 고역사의 참소를 받아 1년만에 물러났다.

그는 궁중에서도 시문을 많이 지었는데 그의 뛰어난 재능을 시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청평조사’는 양귀비의 빼어난 미모를 그린 시인데 고역사는 그 중 한 구절이 양귀비를 천하게 비유했다 하여 그를 탄핵하였다.

이백의 걸출한 시문은 그를 등용하게 하는가하면 파면케도 했다. 실로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백은 두보 하지장 등 당대의 문장가들과 교류하기를 즐겨 이들 사이에 많은 시가 왕래되었다.

사람들은 그를 귀향 온 신선이라는 뜻의 적선(適仙)이라 불렀다.

그는 안사의 난을 예견하였으며 이를 막으려는 노력도 하였다. 그의 조상은 한나라 때 유명한 무장인 이광이었다.

그도 한때 검술을 연마해 무인이 되려는 시도도 했다. 허나 모든 정치적 시도가 허사로 돌아가자 그는 신선이 되려는 수행을 하기도 했다.

이백은 실로 현실에 참여하려고 평생을 노력했다.

그를 무위도식하며 술만 마시고 시만 지은 사람으로 안다면 이는 이백에 대해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음주를 찬양한 것은 술이 이상과 현실에서 고뇌하는 인간들 사이에 교류의 통로가 되었기 때문이었으리라.

도연명의 취향

오래전 세계의 뉴스가 됐던 스콧 니어링 부부가 있었다.

100세가 넘은 스콧 니어링은 스스로 곡기를 끊고 죽음을 택하였다.

그들은 조화로운 삶을 살기 위하여 숲 속으로 들어가 스스로 경작한 농작물로 채식생활을 수십 년 했다.

세속의 온갖 풍요를 헛것으로 규정하고 참된 인생을 살려는 노력이 눈에 선하다.

이러한 은자의 선조인 도연명의 삶을 음미해 보자.

도연명은 4세기말 중국 동진시대에 태어나 40세까지 지방의 관직에 수차례 출사했다.

그는 온갖 비리 속에서 영위하는 관직 생활에 허리를 굽히지 않았다. 41세에 지방 군수직을 버리고 향리에 돌아와 농사일을 하면서 62세까지 살았다.

그가 전원에 돌아오면서 지은 시가 바로 귀거래사(歸去來辭)이다.

‘전원이 장차 황폐해 지려니 어찌 돌아가지 않을 손가’로 시작되는

이 시는 ‘어제는 그릇된 생각이었음을 이제 깨달았노라’에서 절정을 이룬다.

벌이를 위해 소인들과 어울려 벼슬살이를 했던 지난날이 부질없음을 깨달았다는 내용이다.

온갖 비리가 난무하는 오늘날 사람들이 반드시 들어봐야 할 시다.

그는 전원생활을 하면서 음주와 시작을 즐겼는데 후일 많은 시인들과 풍류객들의 선망을 받아왔다.

도연명은 본시 술을 매우 즐겨 누가 술자리에 부르면 사양하는 법이 없었다.

그러나 취하면 홀연히 사라졌다. 그가 음미하던 술 취한 경지는 다음의 시에서 엿볼 수 있다.

사람 사는 곳 오두막 있었지만 문앞에 수레,

말 소리 들리지 않네. 어찌하면 이리 되겠는가?

마음이 멀면 사는 곳도 멀어 진다오.

동쪽울 밑에서 국화를 따며 유연히 남산을 바라보니

산 기운은 석양에 빛나고 새들은 무리 지어 돌아오누나.

이 가운데 참 뜻 있으니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으리요.

이 시의 제목은 음주(飮酒)이다.

즉 그가 술에 취해 주변의 경치에서 느끼는 심경을 나타낸 시로 볼 수 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헛된 공명을 멀리하고 전원에서 살아가는 묘미를 터득한 것이다.

그의 시에는 태반이 술에 관련된 내용이 들어 있다. 그는 늘 술을 마셨지만 잔잔한 취기를 즐겼던 것 같다. 술에 만취한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그의 삶은 현실을 도피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가치관을 관철한 것이다. 그는 스스로 논밭을 경작하며 전원에 살고 또한 그 즐거움을 노래했다.

요즘 국민의 혈세를 사사로이 쓰고도 일말의 반성조차 하지 않는 정치인들과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을 유용하는 이들은 언제나 그 허무함을 깨달을 수 있을까?

오류 선생(도연명의 다른 이름)의 가르침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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