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자욱한 안개구름을 뚫고 창공에 솟아올랐다.
꿈에 그리던 보르도와 코냑의 여정이 시작된 것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프랑스 지도를 펼쳐보았다.
보르도는 파리에서 남서쪽으로 약 600㎞되는 지역으로 대서양 연안에 접해 있다.
프랑스 지도를 보고 있노라면 몽블랑을 위시한 험준한 산들은 스위스 접경지대인 동부 알프스 산맥과 스페인 접경지대인 남서부 피레네 산맥에 몰려있고 나머지 땅의 대부분은 평야로 되어 있었다.
파리에서 보르도까지는 우리나라 남한보다 훨씬 큰 평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차 한 잔 할 사이랄까 이륙 비행기의 안내방송이 어느새 보르도 상공임을 알렸다.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는 동안 창에 기대어 보르도를 굽어보았다.
보르도는 여느 유럽의 중소도시와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푸른 농장을 구획하는 숲이 군데군데 있을 뿐 대지는 낮은 구름으로 연결돼 있었다.
하긴 힐끗 보아서 2천 년이나 내려오는 세계 주고(酒庫)의 비밀을 알아낸다는 것은 어찌 지나친 욕심이 아니겠는가.
보르도 공항에 마중 나온 사람은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해 나는 밴의 앞좌석에서 풍경만을 살폈다. 밴에서 바라보이는 풍경은 비행기에서보다 매우 달랐다.
초록으로 덮인 대지에 팔뚝 굵기의 검은 포도 대궁이 줄지어 서 있는 포도원 과 언덕마다 서 있는 중세풍의 샤토(Chateau, 성)가 어울려 좌우 전후가 ‘바카스의 나라’임을 한눈에 알렸다. 포도원 사이의 울타리 나무에는 복숭아 나무가 많은지 복사꽃 분홍빛이 더욱 낭만스러웠다.
봄의 기운은 곳곳에 있는 강과 소택지에 그득한 물에서 솟아올라 나그네의 몸에 스며왔다.
코냑은 보르도로부터 북쪽으로 120㎞ 남짓 되었다. 한 시간 반을 달리는 사이 풍경은 변함이 없었다.
보르도에서 코냑까지 그냥 하나의 포도원이라 해도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이 여정의 중간 기착지는 코냑의 중심부 보르더리(Borderies)에 있는 샤토 샨텔루프(Ch, Chanteloup)였다.
나지막한 언덕을 둘러쌓은 두 길이나 됨직한 높이의 돌담은 마치 성곽 같았다.
중앙엔 3층으로 된 중세의 샤토가 우뚝 서 있었으며 앞의 호수에서는 백조들이 노닐고 있었다. 한편엔 수백 년 됨직한 수목들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었다.
나는 전망이 좋은 2층에 여장을 풀었다. 여기서 내려다보이는 곳은 온통 포도밭으로 마치 기사들이 줄지어 영주를 호위하고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