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의 탄생
바야흐로 맥주의 계절이 다가온다. 등산이나 운동을 한 후에 땀을 흘리고 갈증이 날 때 마시는 한잔의 시원한 그 맛.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그리고 다량으로 애음 되는 술은 단연 맥주다.
맥주는 언제 어디서부터 양조되기 시작했는지 그 유래가 더욱 흥미롭다.
맥주의 발원지로는 이란, 이라크 지역의 수메르와 바빌로니아와 이집트를 들 수 있다. 이 지역은 기원전 3천 년부터 마호메트가 코란으로 음주를 금할 때까지 양조 기술이 가장 발달된 곳이었다.
중동의 회교국가에서는 오늘날까지 음주를 금하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고대 맥주의 제조 방법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슈메르 유적지에서 출토된 점토판에 기록된 방법은 맥아를 빻아서 빵을 만든 뒤 빵에 물을 붓고 다시 반죽해 발효시켜서 맥주를 빚는 것이었다.
1996년 캠브리지 대학의 이집트 탐구회의 사무엘 박사팀은 고대 이집트 투탄카멘(Tutankhamen)의 맥주를 재현했다.
그들은 피라미드의 벽화와 문자를 해독해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는데 맥주는 빵을 만들다가 나온 부산물이 아니라 원래부터 별도로 양조됐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맥주는 종교의식에 사용되는 필수품이었으며 병자들의 약이었다.
또한 맥주는 화폐 대용으로서 임금으로 지불되기도 했다. 한때, 러시아에서는 보드카가 화폐 대용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맥주 양조법은 동서 유럽으로 전파됐다.
맥주가 전파돼 꽃이 핀 곳은 체코와 독일 등 중부 유럽인데 이 지역에서는 마실 물의 대용으로 맥주가 애용됐다.
이 지역의 물은 대부분 석회수이므로 식수로 부적합하기 때문. 또한 중부 유럽이 양조하기 쉬운 기후를 갖고 있으므로 이 지역이 가장 먼저 발달했다. 중세에는 와인 양조를 수도원에서 관장했는데 맥주도 마찬가지였다.
봉건 영주들은 교황의 지배권을 인정하는 수단 가운데 하나로 수도원에 양조권을 부여했다. 따라서 수도원은 소비하고 남은 맥주를 팔아서 많은 수익을 얻었다.
수도사들은 당시 최고의 고학자들이기도 했으므로 원료의 육종과 재배기술, 양조기술 발달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기독교의 여러 종단에서 음주를 금하고 있으니 이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닌가.
중세에는 맥주가 단지 취하기 위한, 기분 전환의 음료가 아니었다.
당시 음료수와 우유가 수인성 질병을 자주 일으켰기 때문에 맥주는 안전한 음료로 간주됐던 것. 맥주는 일반 음료와 다르다는 특징을 가졌다. 특히 사회적, 종교적 행사에는 맥주가 필수적으로 등장했다.
맥주는 밀, 호밀 등을 포함한 다양한 곡류로 양조됐으나 점차 보리가 주원료로 사용됐다. 보리가 발아가 잘되고 당화가 쉽다는 이유 때문. 초기 교회에서는 맥주 자체를 신의 은총이 깃든 음료로 여기고 앞다퉈 맥주를 양조했다.
곧바로 수도원에 대규모의 맥주 양조장이 건립됐고 5세기에서 9 세기까지 전 유럽의 수도원에서 맥주를 생산했다.
당시 맥주는 세 가지 등급으로 분류됐다.
아버지와 귀한 손님을 위한 1등품, 형제들과 일꾼들을 위한 2등품, 그리고 지나가는 여행자들을 위한 3등품이 바로 그것. 또한 로즈메리 등 향초를 넣은 맥주도 많았다.
계피, 생강, 마늘, 후추 등 진한 스파이스류를 넣은 맥주도 있었는데, 이는 맥주가 상했을 때 냄새를 방지하는 역할을 했다.
체코와 독일에서는 호프를 첨가했는데 그 맛은 썼으나 맥주가 잘 보존된다는 장점이 있었다. 10세기쯤에는 호프가 맥주 양조의 필수 첨가제로 자리잡아 대부분의 수도원에 호프 농원이 생겼을 정도였다.
이 때까지의 맥주는 효모가 상면(上面)에 떠서 발효하는 ‘에일(Ale) 맥주’였다.
이후 독일 바바리아의 수도승들은 저면 발효 효모의 변종을 발견, 맥주는 지하의 낮은 온도에서 장기간 숙성돼 사시사철 안정성 있게 생산되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라거(Lager) 맥주’의 시조인데 ‘라거’란 독일어로 “오래 저장한다”는 뜻. 오늘날 대부분의 맥주가 바로 라거 맥주다.
맥주 양조권은 막대한 이권이었으므로 교황의 관장사항이었고 많은 영주와 왕들이 교황에게서 양조권을 획득하기 위해 혈투를 벌였다.
13세기 보헤미아 (체코)의 웬체스라스(Wenceslas)는 교황에게 맥주 양조권을 얻은 최초의 왕이었다. 이때부터 체코는 유럽의 맥주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1516년 독일 바이에른 공국에서는 맥주의 첨가제로 호프만 사용할 수 있다는 ‘맥주 순수령’을 내리는데 이는 독일 맥주가 발전하는 데 초석이 됐다.
16세기부터는 가정에도 양조가 허용돼 다양한 맥주가 제조됐다. 특히 좋은 맥주를 만드는 집은 그 마을의 모임 장소가 되기도 했다. 어떤 집은 아예 맥주 양조를 본업으로 바꿔 선술집(Tavern)에 맥주를 직접 공급하기도 했다.
5000여 년 동안 맥주 양조 기술이 향상되면서 원료도 많이 변했다.
20세기에 들어 표준화된 원료는 보리와 물, 호프와 효모로 집약된다. 맥주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복잡한 과정으로 양조된다.
맥주는 알코올 도수가 3∼6도로 나머지는 대부분 물이다. 양조용수의 미네랄 함량은 맥주의 품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물에 녹아있는 미네랄은 중탄산나트륨, 염소, 칼슘, 마그네슘, 황 등 6가지 광물이 주성분이다.
이 성분들의 비율은 종종 맥주의 향과 색깔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맥주 공장은 양조 용수 확보가 쉬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미국의 쿠어스 맥주는 로키산맥의 눈이 녹아내린 콜로라도 강물로 양조하는 것을 자랑한다. 아일랜드의 기네스 맥주나 체코의 필즈너 맥주도 각기 양조용수를 자랑한다. 맥주 생산에는 세척과 냉각 등에 많은 물이 필요하며 한 병당 대략 다섯 배 용량의 물이 소모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오비(OB)와 하이트(HITE)가 물 전쟁을 벌일 정도로 양조 용수는 맥주의 맛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맥주라는 이름은 보리에서 유래됐다.
예로부터 전 세계적으로 가장 선호했던 양조용 원료는 보리와 수수였다. 보리와 수수는 싹이 틀 때 다른 곡물에 비해 다량의 효소가 생성된다. 맥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보리를 맥아(엿기름)로 만들어야 한다. 맥아는 낱알에 있는 전분을 쉽게 당화해 효모를 발효시키는 당즙을 만들어낸다.
맥아 제조법은 수천 년 전에 개발됐다. 30년 전 우리나라도 감주나 술을 빚을 때 엿기름을 만들어 사용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일어난 맥주양조 문명은 사방으로 전파되었다.
맥주의 첨가제로 다양한 향초와 과일들이 이용되다가 최종으로 낙점된 것이 호프였다.
호프처럼 신기한 식물도 드물다. 호프는 암수딴그루의 덩굴식물로 5∼6m까지 뻗으며 솔방울 같은 꽃이 핀다. 맥주 양조용 호프 꽃은 암그루의 꽃이다.
호프는 맥주의 향기와 쓴 맛을 내준다. 또 맥주의 청정도를 높여주고 잡균의 번식을 억제해 준다. 호프는 강한 이뇨작용이 있어 맥주 역시 이뇨제의 일종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필자는 신장결석으로 고생한 적이 있는데 병원에 가서 옆구리의 통증을 호소했더니 의사가 대뜸 하루에 맥주를 2천CC씩 마시라고 권했다. 한동안 그렇게 했더니 결석이 사라졌다.
맥주가 약처럼 이용된 경우였다. 호프는 냉량성 작물이라 체코 등 동유럽에서 잘 자란다. 개마고원산 호프는 품질이 좋아 북 한의 주요 수출품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날이 따뜻해지고, 사람들의 옷차림이 짧아지고 해가 길어져 운동하기에 좋은 시기가 바로 맥주를 즐기기 좋은 계절이기도 하다.
운동 후 흘린 땀을 식히는 데는 맥주 한 잔이 제격이다. 갈증이 날 때 신선한 맥주를 마시는 것은 실로 삶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이다. 맥주는 본래 상쾌한 청량감을 주는 술이므로 마실 때의 조건을 잘 맞춰주면 더욱 제 맛이 난다. 맥주의 신선도를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조건은 온도이다.
맥주의 온도가 너무 낮으면 맥주의 향미 성분을 제대로 음미하기 힘들고 온도가 높아지면 맥주의 청량감이 감퇴한다.
맥주 속에는 탄산가스가 포화되어 있는데 온도에 의해 방출 속도가 달라진다. 알맞은 온도에서는 탄산가스가 서서히 방출돼 마실 때 기포가 입안과 목구멍을 적당히 자극, 청량감을 낸다. 마시기에 좋은 온도는 계절에 따라 약간 다르나 여름에는 아주 시원한 5∼10도가 좋다.
맥주를 차게 보관하다보면 간혹 어는 수가 있는데, 이때는 맥주 속에 있는 소량의 단백질이 응고돼 혼탁해질 뿐만 아니라 녹여서 마셔도 제 맛이 나지 않는다. 따라서 냉장온도를 잘 지켜야 한다.
같은 맥주라도 어느 주점에서 마시느냐에 따라 다른 맛이 난다. 이것은 그 집에서 위생적인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특히 냉장시킨 청결한 잔에 맥주를 따라 마시면 훨씬 맛이 상쾌하다. 덜 닦인 잔에 맥주를 따르면 잔에 묻어있는 기름기나 때가 거품을 사그라뜨리거나 미묘한 향을 변질시키기 때문이다.
일본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은 흔히 일본의 맥주가 우리나라 맥주보다 맛있다고 한다.
사실 오늘날 우리나라 맥주는 세계 어느 나라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다만 유통과정 또는 맥주의 서빙 과정에서 온도나 용기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맥주의 맛은 신선한 보관과 청결한 용기 관리에 좌우된다.
맥주를 잔에 따르는 방법에 의해서도 맛이 달라질 수 있다. 맥주가 잔 바닥에 세게 부딪히면 거품이 심하게 일고 탄산가스와 향기가 손실된다.
따라서 맥주를 따를 때는 맥주가 잔의 벽을 타고 흘러내리게 해야 한다. 즉, 처음에는 잔을 기울였다가 술이 잔에 고이는 정도에 따라 잔을 수직으로 세우면 된다.
이러한 세심함이 맥주를 즐기는 멋이라 할 수 있다.
술을 즐기는 데는 모름지기 오관이 다 동원되어야 한다. 맥주의 기포가 황금 색 액체에서 솟아올라 흰 거품을 이루고 어느새 잠잠해지는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술자리를 같이 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적당히 마시는 맥주는 생을 풍요롭게 하는 묘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