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유럽에는 일찍이 강화 와인이 발달했다.
지중해와 대서양을 끼고 있는 지리적 여건으로 같은 위도 상에 있는 다른 지역보다 기후가 온난하다.
와인을 생활필수품으로 여기고 있는 남유럽 사람들은 와인의 보존에 골몰했다. 와인은 동굴이나 지하 셀러에 저장하여 숙성하지만 온도가 높으면 산폐될 수 있기 때문이다. 13세기 이후 증류기술이 보급되어 브랜디가 생산된 이래로 남유럽 사람들은 와인에 브랜디를 가하여 와인을 저장하는 시도를 하였다.
통상 10∼12도의 알코올 농도를 지닌 와인에 브랜디를 가하여 16∼18도로 만든 것이 강화 와인이다. 알코올 농도가 16도 이상 되면 미생물의 생존이 극도로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와인을 강화 와인이라 한다.
강화 와인의 일종인 마데이라 주는 생산지명을 그대로 본땄다.
마데이라는 대서양의 북아프리카 연안에 인접한 섬이다. 포르투갈 영인 이 섬에 강화 와인인 마데이라 주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동인도 항로가 개척된 1600년대이다.
마데이라 섬의 중심 항구인 푼샬(Funchal)에는 동인도 항로를 이용하는 유럽 각지의 선박들이 머물러 가는 곳이었다.
선원들에게 있어서는 와인은 식량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간주되었는데 마데이라 섬에 도착할 즈음에는 와인이 식초가 되어 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당시 와인 수송용 용기는 오크 배럴이었는데 배에서 격렬하게 흔들리는 상태에서, 습하고 더운 기후에 와인은 쉽게 산폐되었다.
와인 상인들을 비롯한 선원들 자신의 이익으로서 와인의 보존은 큰 문제가 되었다.
마데이라는 한 술집에서 우연히 와인에 갓 증류한 브랜디를 첨가하여 더운 창고에 방치해둔 데서 탄생했다.
마데이라 주는 실로 찜통같이 더운 창고에서 숙성된다.
이 술은 더운 온도에 자연히 숙성이 일어나 와인의 부드러운 풍미와 증류주의 강한 맛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상하지 않는 장점이 있다.
마데이라 섬에서는 아예 대량의 유럽 와인을 구입하여 마데이라 주를 만들어 판매하였다.
19세기 냉동기술이 발달하기 전까지 마데이라 주는 인도나 동남아시아뿐만 아니라 남북 아메리카까지 대량으로 판매되었다.
마데이라 주는 네 가지 스타일로 분류되는데 주로 사용되는 포도 품종에 따라 이름이 지어졌다.
연한 색깔의 드라이한 ‘세르시알(Sercial)’로부터 단맛과 색깔이 강해지는 순서대로 ‘베르델료(Verdello)’, ‘보알(Boal,부알Bual)’, ‘마므지(Malmsey)’가 그것이다.
고급 마데이라는 장기간 오크통에서 숙성되는데 보통 리저브(Reserve)는 5년 숙성된 것이며 스페셜 리저브는 10년 숙성된 것이다.
마데이라 주는 스프와도 잘 어울리나 주로 디저트 케익과 함께 마신다.
서양 사람들이 숙취제거제로 해장술처럼 마시는 프레리 오이스터는 마데이라 주와 날계란을 혼합한 칵테일이다.
프랑스 식단이 화려하지만 와인에 관한 한 이탈리아도 프랑스 못지않다.
이탈리아의 정식에는 다양한 와인과 증류주가 서빙된다.
아페리티프(aperitif, 식전에 식욕 촉진제로 마시는 술)와 식사 도중에 마시는 테이블 와인 그리고 후식과 함께 마시는 증류주가 필수적으로 제공된다.
필자는 밀라노에서 몇 차례 이탈리아 정식에 초대된 적이 있었다.
와인 잔이 네 가지나 나오는데 우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식사라기보다 술자리에 초대된 느낌이었다.
특히 이들의 후식 주는 도수가 얼마나 높은지 한 잔 마시고는 취하고 말았다.
그런데 식전주로 나오는 술은 대개 버무스(이탈리아어식 발음으로는 베르무트)였는데 맛이 산뜻해 입속에 침이 저절로 생겼다.
버무스는 여타의 강화 와인과 향미가 완전히 다르다. 버무스는 와인을 주정으로 강화한 다음 향미식물을 가미한 것이다.
이와 유사한 강화 와인으로서 셰리나 포트는 알코올 농도를 강화한 다음 오크통에서 숙성하는 동안 품질변화가 일어난다.
따라서 셰리나 포트에 있어서는 균일한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블랜더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버무스는 공산품처럼 품질 변동이 거의 없다.
버무스의 원천은 고대 그리스에서 변질된 와인의 맛을 위장하기 위해 쑥을 넣은 데서 유래한다.
그런데 위를 보호하며 강정제 역할을 하는 쑥의 약리작용 때문에 초기 버무스는 약으로 복용되었다.
버무스의 어원은 쓴 쑥에서 유래했다. 후에 계피, 오렌지 껍질, 생강 등이 첨가제로 사용되었다.
버무스의 주산지는 북부 이탈리아의 알프스 산록 지역과 프랑스의 남동부다.
이 지역에서는 양질의 와인과 아울러 많은 향초가 생산되는 곳이다. 이탈리아산 버무스는 레드와인에 주정을 첨가한 후 당을 가미해 향초를 침지한다.
따라서 이탈리아 버무스는 단맛(스위트)이 강하다. 향초도 비교적 부드러운 것을 주로 사용한다.
반면 프랑스 버무스는 화이트 와인에 주정을 첨가한 후 향초를 넣는다.
이때 쓴 쑥이 포함되어 쓴맛(드라이)이 매우 강하다. 이런 연유로 소비자들은 단맛의 버무스를 이탈리안으로, 쓴맛의 버무스를 프렌치로 표현하기도 한다.
버무스는 약제로 출발한 이미지 때문에 대량 소비되지는 않으나 식전주로서 널리 음용된다.
또한 특이한 향미로 인해 버무스는 칵테일에 사용되어 꾸준하게 일정량이 소비된다.
대표적인 칵테일로서 마티니는 3온스의 진과 1온스의 드라이 버무스로 만든다. 브롱스는 진과 드라이 버무스와 스위트 버무스를 2대1대1로 섞어 만든다.
버무스의 유명 브랜드로는 이탈리아산 마티니 엑스트라 드라이(Martini extra dry)와 프랑스산 두보네(Dubonnet)가 있다.
독일의 정식에 초대되면 아페리티프로 나오는 술이 있다.
붉은 망토를 두른 투우사가 어깨에는 포트 잔을 올려놓고 검은 중절모를 쓴 채로 멀리 항구를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샌드만(Sandman) 포트이다.
와인의 풍미를 그대로 내면서도 달고 부드러운 뒷맛을 남기는 샌드만 포트는 200여 년간 포르투갈 포트의 대표 상표로 유럽인들의 식단을 즐겁게 했다. 셰리와 함께 포트는 정식의 필수품으로 애용되고 있다.
한때 대한항공 기내에서도 샌드만 포트를 제공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포트가 많이 알려져 있다.
포트의 탄생 과정은 영국과 프랑스의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 흥미롭다.
1152년 영국 왕 헨리 2세가 프랑스의 왕녀와 결혼하자 그의 영지인 보르도 지방은 영국의 준영토가 되었다.
그때부터 보르도의 특산물인 와인이 영국의 식단을 장식하게 되었다.
그후 14∼15세기에 걸쳐 100여 년 동안 영토의 영유권 전쟁(100년 전쟁)을 벌였는데 영국이 패배했다.
이때 영국인들은 와인이 없는 정식은 생각할 수 없었다. 보르도의 와인이 끊기자 영국의 와인 상인들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찾았다.
영국 와인상들은 1667년 스페인 듀로 지역의 와인을 수입했다. 이들은 수송 중에 와인이 상해 못쓰게 되는 경험을 수차례 겪었다.
이들은 브랜디를 가하여 와인을 강화했는데 수송 중에 목통에서 숙성되어 맛이 오히려 원래의 와인보다 좋게 변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 상인들은 포르투갈의 와인 수송항인 포르토(Porto)의 이름을 따서 술 이름을 포트(Port)로 지어 프랑스 와인과 차별화했다.
오늘날 꾸준히 소비되고 있는 포트는 뛰어난 품질 덕택이다. 포트의 특이성은 자연환경에서 유래한다.
듀로 강의 계곡이 지닌 토양과 국지적 기후 그리고 지형이 포트와인의 그윽한 맛을 내는 데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듀로 계곡은 자갈과 바위가 많은 척박한 땅이다. 이곳은 여름철에는 매우 덥고 겨울에는 춥다.
따라서 이 지역의 포도는 산미와 당도가 적절하여 와인 생산에 최적의 품질을 제공한다.
포트는 발효가 진행 중인 레드 와인에 포도 주정 또는 브랜디를 첨가하는데 적정한 포도당이 최종 제품에 남게 된다.
따라서 포도 자체에서 우러나는 향기와 단맛이 술에서도 그대로 유지된다.
보르도나 캘리포니아 와인이 와인 메이커로 최상의 품질을 유지하듯이 포트도 테이스터(Taster)라고 불리는 브랜더들에 의해 다양한 품질의 제품이 유지된다.
포트는 세 가지로 나뉘는데 향과 맛이 무거운 적색의 루비 포트, 약한 적갈색의 토니 포트, 그리고 청포도로 만든 화이트 포트가 있다.
포도의 작황이 뛰어난 해의 빈티지 포트도 있다. 포트는 단맛으로 인해 식후에 디저트로 음용된다.
셰리는 화이트 와인에 브랜디를 첨가한 일종의 강화 와인이다.
위스키나 브랜디의 숙성법이 발달(18세기 중엽)되기 전까지는 스페인의 셰리(Sherry)가 애주가들의 총애를 받았다.
미숙성된 위스키나 브랜디는 알코올 도수는 높으나 향과 맛이 거칠었기 때문이다.
셰리는 무척 합리적인 방법으로 숙성과 블렌딩이 된다.
셰리 통을 3~4단으로 쌓고 윗단과 아랫단의 통들을 서로 연결하여 맨 아랫단에 있는 오래 숙성된 셰리를 따라 내고 그 만큼의 새 술을 맨 윗단의 통에 보충해 준다. 이렇게 함으로써 셰리가 자동적으로 블렌딩이 되는 것이다.
솔레라(Solera)라고 하는 이 블렌딩 방법으로 인해 같은 양조장에서는 늘 균일한 품질의 셰리를 생산할 수 있다.
그러나 항상 새 술과 숙성된 술이 혼합되는 관계로 생산한 포도원이나 수확 연도(VINTAGE)를 표기할 수는 없다.
사방에서 모인 다양한 포도가 사용되기 때문이다.
셰리는 특이한 향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을 와인의 표면에 막을 형성하는 효모에 의하여 생성된다.
숙성 초기 맨 윗단에서 생성된 향은 밑으로 내려오는 사이에 숙성이 진행되면서 더욱 풍부해지고 맛은 부드러워진다.
셰리는 흔히 세 가지로 나뉘어진다.
피노(Fino)는 신선한 사과 비슷한 향기가 있으나 단맛이 전혀 없어서 식전에 마시기가 좋다.
아몬틸라도(Amontillado)는 피노보다 부드럽고 색이 진하며 약간 단맛을 가지고 있다.
올로로소(Oloroso)는 묵직하고 구수한 맛이 있으며 셰리 중에서는 가장 단 술이다. 올로로소는 주로 식후에 마신다.
스페인에는 유럽 국가들 중에서 가장 많은 포도원이 있으며 다양한 토질에서 다양한 품종의 포도가 생산된다.
셰리는 이런 다양함을 모두 지니고 있으면서도 통일된 맛과 풍미를 지닌 스페인을 대표하는 술이다.
저녁 노을이 붉에 물드는 시간에 연인끼리, 혹은 다정한 친구와 함께 한잔의 셰리를 마시며 스페인 사람들처럼 열정과 낭만을 만끽해 보는 것은 어떨까.